어느푸른저녁

기억나지 않는 꿈

시월의숲 2009. 3. 13. 21:35

굳이 프로이트를 말하지 않더라도, 꿈은 내가 실현하지 못한 어떤 욕망의 발현인 것이 분명하다. 어떤 꿈을 꾸었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지만, 내 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이름이 있었고, 그 이름들은 마치 그들이 처한 상황이나 성격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어떤 징표 같았다. 꿈을 꾸면서도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생생히 알 수 있었지만 결코 깰 수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꿈을 깨고 난 뒤에는 정제되지 않은 슬픔의 찌꺼기가 내 가슴을 짓눌러서 나는 한동안 꼼짝하지 못하고 그것이 옅어지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알 수 없다. 전혀 알 수가 없다. 이상한 일은, 꿈 꿀 때는 그리도 생생하게 느껴지던 것이 깨고 나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허망하게 느껴지던 슬픔. 다만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라는 확신만이 들 뿐.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이다. 기억나질 않지만 나는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내 욕망의 발현이 바로 내가 꾸는 꿈이고, 그것은 꿈꾸는 동안에만 실현되는 것이며, 꿈에서 깨고 난 뒤에는 하얗게 사라져버리는 허망한 꿈이다. 그래서 나는 그저 슬퍼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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