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미셸 투르니에, 《외면일기》, 현대문학, 2006.

시월의숲 2009. 3. 22. 20:56

 

나는 자꾸만 어머니 릴핀느를 생각하게 된다. 그녀는 죽으면 화장해서 유골을 이 정원에 뿌려달라고 했다. 제 어머니를 불태운다는 것은 자신의 일부를 불태우는 것이고 자기 자신의 유년시절을 불태우는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데는 이기심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다. 너 자신에 대하여 슬퍼하며 눈물 흘리는 짓은 그만두어라! 나르시스의 눈물이니.(1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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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학교의 어린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매일 큼지막한 공책에다가 글을 몇 줄씩 쓰십시오. 각자의 정신상태를 나타내는 내면의 일기가 아니라, 그 반대로 사람들, 동물들, 사물들 같은 외적인 세계 쪽으로 눈을 돌린 일기를 써보세요. 그러면 날이 갈수록 여러분은 글을 더 잘, 더 쉽게 쓸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특히 아주 풍성한 기록의 수확을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눈과 귀는 매일 매일 알아 깨우친 갖가지 형태의 비정형의 잡동사니 속에서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골라내어서 거두어들일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사진작가가 하나의 사진이 될 수 있는 장면을 포착하여 사각의 틀 속에 분리시켜 넣게 되듯이 말입니다."(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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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바람은 낙엽을 흩어놓지 않는다. 반대로 바람은 낙엽을 작은 무더기 무더기로 깨끗하게 모아놓는다. 거세지만 정성스런 바람. 자연 속의 무질서를 초래하는 쪽은 인간이다.(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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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햇빛, 푸른 하늘. 눈이 풍경 속으로 그 철부지 동화의 세계를 가져다준다. 때로 무엇인가가 부드럽게 구겨지는 소리가 난다. 지붕에 덮여 있던 눈이 미끄러져 떨어지며 내는 소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렇지만 뉴스에서는 전쟁, 살육, 기아, 전염병들의 사태. 계속 마음 편하게 살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이기주의와 무신경의 딱딱한 껍질! 아주 보잘것없는 자비나 인간적 유대도 마치 심장 위에 떨어진 벼락처럼 우리를 죽게 만들지 모른다.(2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