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장 그르니에, 《섬》, 청하, 1996.

시월의숲 2009. 2. 8. 21:11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가지 사건들은 ― 어쨌든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우리 자신의 가장 내밀한 곳에 감추어져 있던 것을 끊임없이 새로이 발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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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세계는 침묵과 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동물들이 잠자듯 엎드려 있는 것이 보기에 좋다. 그들이 그렇게 엎드려 있을 때, 대자연과 다시 만나고 그들의 몸을 내맡김으로써 그들은 자신을 키워 주는 정기를 받는다. 우리가 노동에 열중하듯이 그들은 휴식에 그렇게 열중한다. 우리가 첫사랑에 빠지듯이 그들은 깊은 신뢰로 잠 속에 빠져든다.(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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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시간이 다 내 것이었다. 내가 죽은 후에도 끊임없이 계속될 그 시간, 그리고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있어 왔던 저 무량한 시간들 말이다. 그토록 햇빛 가득한 눈부신 이 시간들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기대할 것도 없지만 잃어버릴 것 또한 없다는 것을.(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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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우리도 모르게 할 말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그런 것은 다만 자신의 관심사일 뿐이라는 사실을 적당한 때에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생각들만이 운좋게도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뿐이다.(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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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다가오는 나날을 어떻게 해서든 견디어내고 싶다면, 그 어떤 것이든 하나의 대상에 다만 몇 시간이라도 열중해 보라.(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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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낯선 어느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몹시도 원했었다. 나는 겸허하게, 그리고 가난하게 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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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바로 일상의 현실로부터 나를 떼어놓는 것이었고, 그래서 가식없는 <자연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연이 그런 자연의 상태를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왜냐하면 자연이란 곧 투쟁이고 공포이기 때문이다.(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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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묻는다, 여행이란 왜 하는 것인가고.

언제나 어떤 완전한 힘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일상의 삶 속에 그대로 잠들어 있는 여러가지 감성들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자극제일 수 있다. 사람들은 그럴 때 한 달이고 일 년이고 몇 가지 진귀한 감각들을 체험해 보고 싶어서 여행을 하는 것이다. 나는 그 감각들이 우리에게서 저 내면의 노래를 흘러 나오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 내면의 노래가 없다면 우리가 느끼는 그 어떤 것도 아무런 값어치를 지니지 못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93쪽)

 

 

 

- 장 그르니에, <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