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실수하며 살자

시월의숲 2009. 5. 5. 16:33

며칠 전 구미에 교육을 가서 DISC라는 것을 배웠다. 일종의 성격유형을 분석하는 방법인데, 지난 육개월 동안에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자가자신에 대한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주도형(D), 사교형(I), 안정형(S), 분석형(C) 이렇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나는 분석형이 제일 높은 것으로 나왔다. 분석형은 대체적으로 '왜?'라는 물음을 달고 다니며, 논리적이고 섬세하며, 항상 수치와 인용 등의 믿을만한 근거를 요구하며, 느리고, 눈에 띄지 않으며, 일에 있어서는 자기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끝내는 법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주도형으로부터는 답답함을 느끼게 하고, 사교형으로부터는 고리타분함을 느끼게 한다. 분석형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손석희, 이영애 등이 있다고 하는데, 글쎄 나는 이 유형에 그리 맞는 인물은 아닌 것 같다. 분석형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무척이나 덜렁대고, 쉽게 일을 끝내려하고, 그리 치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주관적인 생각이니, 사교형에 가까운 인물이 봤을 때는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이건 상당히 주관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어쨌거나 내 성격유형이 분석형이라는 결과에 어느정도는 수긍한다. 결과야 어쨌든 일에 있어서는 꼼꼼히 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교형인 인물과의 대화에 힘들어하는 걸 보면 더 그런 것 같다. 그들의 발랄함, 생기, 유쾌함 등이 어떨 때는 굉장히 과장되고 알맹이가 없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싫어하지는 않는다. 내게 부족한 면이기에 때론 그들의 그런 긍정적인 에너지가 무척이나 부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사람에게는 다양한 면이 공존하기 때문에 딱 이런 부류의 사람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대체로 이러이러한 면이 많은 사람이 존재하고 그들과의 대화에는 어떤 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 자신은 물론 타인에 대한 기대치를 조금 낮추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기대치가 너무 높기에 실수를 해도 용납이 안되는 것이며, 타인이 저지른 조그만한 실수에도 쉽게 화를 내는 것이다. 머리로는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그 완벽성을 추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나 자신을 더욱 괴롭히는 길이라는 것도 모른채, 혹은 그 괴롭힘이 내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착각에 젖은채.

 

이제부터라도 나를 조금 놓아주어야겠다. 스스로 옭아맨 완벽성과 순수성의 그물에서. 실재로 그리 잘 할 자신도 없으면서 나는 왜 그리 잘난 척을 한 것일까?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다. 실수하며 사는 것이 인생인데.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실수도 할 수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이자. 모든 것은 나에게서 시작된다는 깨달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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