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아프다는 것

시월의숲 2009. 5. 20. 21:32

며칠 시원하더니 다시 더운 날씨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내일은 비가 오고 기온이 좀 내려간다고 하니 숨 좀 쉴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며칠,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나는 으슬으슬 한기가 들었다. 감기가 든 것이다. 감기가 걸리니 날씨가 더운건지 내 몸이 더 더운건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혹시 요즘 유행하는 신종플루가 아닐까 잠시 걱정했지만, 그 생각은 접어두기로 했다. 오늘 몸이 괜찮은걸 보니 아마도 그건 아니었을 것이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약해지고 만사가 우울하고 귀찮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그런 것일게다. 건강이 최고라는 말이 아플 때만큼 절실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없다. 책을 읽는 행위도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는 행위도 모두 몸이 건강해야 제대로 느끼고 감상할 것이 아닌가. 몸은 마음과 연결되어 있어서 일단 몸이 무너지면 마음은 너무나 쉽게 무너진다. 그리고 마음마저 무너졌을 때 우리는 그것을 절망 혹은 죽음이라고 부른다. 아, 이런 진부한 설명조의 말투가 싫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몸이 아프면 어휘 구사력이나 상상력도 떨어지는 것일까? 하여간 아프지 말 일이다.

 

아픈 와중에도 칸 영화제에 대한 소식은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보고 싶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아직 개봉을 안했던가. 하지만 영화관 하나 없는 이곳에서 삼 주 연속으로 일을 해야하니 실제로 볼 수 있는 것은 그 이후에나 될 터인데, 그때까지 극장에 걸려있으려나. <박쥐>는 모르겠지만 <마더>는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 지금 생각으로는 <박쥐>가 무척이나 보고 싶지만, 어쩔 수 있나. 몸이 아파서그런지 영화나 공연에 대한 관람욕이 커진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도심 한가운데 있는 한쪽 면이 통유리로 된 카페에서 커피나 마시면서 거리를 지나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고 싶은 건지도.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너무나 먼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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