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느 곳에도 있지만, 아무 곳에도 없는

시월의숲 2009. 8. 10. 20:46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에고 서핑'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자신의 이름을 넣고 검색하는 것을 말하는데,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주로 이름을 날린 작가나 예술가 혹은 연예인이 아마도 에고 서핑을 주로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유명한 사람은 전혀 아니지만, 예전에 한 번, 호기심이 발동하여 내 이름을 치고 검색을 해 본적이 있다. 검색 결과를 쭉 훑어본 결과, 놀랍게도 실제의 내가, 이름이 같은 수많은 타인들 틈에 섞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깜짝 놀라 클릭을 해 봤더니, 대학교 때 교수님께 드렸던 내 소설이 내 이름과 함께 인터넷 카페에 올려져 있는 것이었다. 소설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끄적임을 천지도 모르고 교수님께 불쑥 들이민 당시의 나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인터넷 카페에다 올려 놓으신 교수님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가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만 얼굴이 화끈거리고 몸둘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어서 그 글을 삭제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는 능력이 내겐 없었다. 그것을 삭제하려면, 그 글을 올린 교수님에게 어떻게든(그 카페에 가입해서 교수님께 쪽지를 남기든, 메일을 보내든, 실제로 전화를 걸든 간에) 연락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나는 한동안 전전긍긍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아무렴 어떠냐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내가 누구인지, 그 누가 알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수 백, 수 천의 내 이름들 속에 진정 내가 누구인지 그 누가 알 것인가? 설사 누군가 나에 대해 어떠한 말을 남겼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정 나에 관한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곳에서 나는 교수이기도 하고, 군인이기도 하며, 가수이기도 하고, 방금 실연을 당한 남자에다가, 초등학교 동창회의 회장이기도 하다. 이 세상(사이버 공간이든 현실공간이든 간에)에서 '나'는 어느 곳에도 있지만, 아무 곳에도 없는 사람이다. 그것은 발없이 이리저리 떠다니는 유령과 같다. 유령은 존재하는 것이던가? 보이지는 않아도 우리 모두가 그것에 대해 알고, 그것을 지칭하는 말이 있으므로?  어쨌든 나는 유령처럼 존재한다. 내가 그렇듯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또다른 내가 살고 있는 것만 같아서. 마치 내 전생과도 같이, 현생에서 흩어져 살아가는 수많은 나. 하지만 나는 왜 그들 중 하나일 뿐인가? 왜 나는 반드시 '나'여야만 하는가? 딱 한 번만이라도 뜨겁게 '나'를 안아보지 못하고 쓸쓸하게 생을 마감해야 하는 운명에의 예감이 내 목을 조른다. 수없이 많이 존재하는 나라는 것은, 사실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는 것과 같은 의미임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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