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무엇이 그리 못마땅한 것인지

시월의숲 2009. 8. 17. 21:03

성격이 점차 괴팍해져가고 있다. 괴팍해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평소에는 그렇지 않은데, 집에만 가면, 가족들만 만나면 무언가 편안하지 못하고, 내안에 송곳 같은 것이 튀어나와 상대방을 찌르고 나도 찔리고 마는 느낌, 그런 상황이다. 점차 그런 상황이 악화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오랜만에 만난 고모에게 예전과 다르게 요즘들어 내 성격이 못되어져 가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인지, 나도 나를 모르겠다. 예전엔 그저 못마땅한 것이 있어도 참고 말았는데, 요즘엔 그런 것들이 나를 가만있게 하지 못하고, 상대방, 특히 가족들에게 날카로운 비수의 말을 퍼붓게 한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쭈글쭈글한 피부에 못된 성격만 남은 괴팍한 노인네가 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무엇이 그렇게 못마땅한 것인가? 이제서야 사춘기에 접어든 것인가?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사춘기가 없었다. 남들이 사춘기라고 부를만한 시기에 나는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내면적으로도 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모든 것들이 혼란스럽다.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그 사람에 대한 실망만 커지고, 특히 가족들을 대함에 있어 한숨과 짜증만 나는 것이다. 지금껏 억압되어 있던 내면의 무언가가 지금에서야 표면으로 올라오려 하는 것인가? 왜 그때 어른들은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 왜 그렇게 밖에 할 수가 없었는지, 왜 그렇게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급기야는 다른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었어야 했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기 때문에? 그것이 새삼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나를 조금더 지켜봐야겠다. 나 자신에게 조금만 더 여유를 주자. 크게 심호흡을 하고, 모든 사물을 한발작 뒤에서 바라봐야지. 그렇게 노력하다보면 나를 괴롭히는 무언가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에서 벗어나는 길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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