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시월의숲 2009. 8. 7. 16:19

커피는 마시지 마세요. 술은 절대 안됩니다.

 

날카로운 눈빛에 금테 안경을 낀, 날렵하지만 다소 왜소해 보이는 의사가 그를 향해 말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는 예, 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었다. 까짓거 안 마시면 되지, 라며 오히려 자신의 건강을 위해 더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술을 많이 마실 수 있는 능력과는 별개로 술 자체를 즐기는 편이 아니었으므로 그렇게 대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커피는 종종 마시곤 하였는데, 그것마저 마시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잠시 아쉬운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아무렴 어때, 라며 자신을 다독였다. 커피와 술은 만병의 근원이다. 나는 담배마저 피우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 내 병을 핑계로 커피의 유혹과 술자리에서의 권유도 모두 뿌리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병원을 나오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의 결심은 그리 굳건하지 못했다. 그가 다시 술이나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나, 병원을 나오면서 굳게 결심한 것들이 그를 부자유스럽게 만드는 것에 불만이 생긴 것이다. 비록 자주 마시지는 않는 술과 커피였지만, 막상 자신의 병 때문에 그것을 마시지 못하게 되자 그는 무척이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에게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을 이롭게 해줄 수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자신을 옭아매는 사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무척이나 충격이었다. 그는 자신의 병을 발견하기 이전보다 더욱 그것을 갈망하게 되었다. 누구도 그에게 권유나 강요 혹은 유혹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렇기 때문에 더욱 깊어지는 갈망에 그는 의아한 기분을 느꼈다.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이토록 그것을 원하게 되다니. 그는 생각했다. 모든 금지된 것들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매혹적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또 그것 때문에 또다른 병이 드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