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세 개의 깎지 않은 손톱과 일곱 개의 깎은 손톱

시월의숲 2009. 11. 25. 22:06

1.

일을 마치고 바로 미장원에 가서 머리카락을 잘랐다. 한 달 정도 긴 머리인데, 제법 뒷목을 덮는다. 집에 오는 길에 롯데리아에 들러 햄버거를 두 개 사들고와 저녁삼아 먹고, 손톱을 깎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인터넷에 접속하여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블로그에 들어왔다. 자판을 두드리려는 찰나, 이런, 왼손가락 세 개의 손톱이 그대로 남아 있다. 다 깎았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이 잠깐 외출하고 온 모양이다. 세 개의 깎이지 않은 손톱과 일곱 개의 깎인 손톱을 번갈아 바라보니, 무언가 묘한 기분이 든다. 일생동안 깎아낸 손톱의 길이는 총 몇 미터나 될까? 부질없는 궁금증이 일고.

 

 

2.

겨울이라 하기에 아직은 이프로 정도 부족한 느낌이다. 아침 저녁으로는 추운데, 낮으로는 햇살에 제법 온기가 있기 때문이다. 닫아놓은 창문으로 비춰드는 햇살을 온몸으로 맞고 있으면 겨울이라고 말하기가 망설여진다. 그래서 초겨울이라는 말이 있던가? 늦가을과 초겨울의 중간쯤? 이런 날씨에도 아랑곳 없이 동생은 결혼을 한다고 난리다. 아직까지 동생이 결혼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결혼식 당일이 되면 실감이 날까? 깍지 않은 세 개의 손톱을 뒤늦게 발견했을 때의 느낌처럼 기묘하다. 너무나 현실적인 일이 내게 있어 전혀 현실적이지 않을 때 느껴지는 괴리감. 동생이 결혼한다는 사실. 집을 떠나 먼 곳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 이젠 집에 가도 동생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

 

 

3.

불꽃처럼 나비처럼, 이라는 영화가 있다. 명성황후의 로맨스를 그린 영화인데, 영화를 보고나서 남는 것은 오직 제목 밖에 없다. 삶을 불꽃처럼 나비처럼 살 수는 없는 것인가, 라는 물음이, 내 삶에 대한 회의가 들기 때문일까? 사실 삶에 대한 회의, 라는 말은 사치이자 허영에서 나온 말일지 모른다.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삶을 치열하게 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인 것이다. 다만 무엇인가 치열하게 몰두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그것이 괴로움이 되는 것은 사실 치열하게 몰두할 만한 무언가를 찾지 못하고 그저 생각만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생각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나를 가두는 감옥이다. 감옥에서 벗어나 책을 읽어도 치열하게, 음악을 들어도 치열하게, 사랑을 해도 치열하게, 글을 써도 치열하게... 삶을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살고 싶다. 불꽃처럼, 나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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