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웃음

시월의숲 2009. 12. 1. 20:56

직장에서 친절교육을 받았다. 제목은 친절교육인데, 사실은 웃음치료 비슷한 뭐 그런 교육이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웃고 살자는 이야기. 웃음 치료 강사의 얼굴은 당연한듯, 웃지도 않았는데 웃고 있는듯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강사의 얼굴을 보면서, 얼마나 웃으면 저런 주름이 생길까 생각했다. 억지로 웃는다고 되는 일일까? 하지만 억지로라도 웃으라고, 강사는 말했다. 나를 포함하여 교육에 참여한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고, 인사하고, 춤을 추고, 박수를 쳐댔다. 심지어 알록달록한 색깔로 만들어진 곱슬머리 가발과 꼬깔모자, 인조 엉덩이와 가슴을 붙인 옷과 우스꽝스러운 안경을 쓰고 몸을 이러저리 흔들어댔다. 처음에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려니 얼굴 근육이 잘 움직여지지 않아 곤혹스러웠지만,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서로 참여하여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렇게 떠들썩하게 웃고나니 몸 속의 기지개가 켜지는 느낌이 들었다. 일상 생활에 억눌려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한 내 몸 속의 유쾌하고 긍정적인 기운이 마구마구 발산되는 듯했다. 강사의 말이 맞았다. 웃음에는 어떤 약도 가지지 못한 고유의 치유능력이 있다. 웃음은 매사를 긍정적이고 유쾌하게 만들며, 그러한 긍정과 유쾌함은 삶에 여유를 가지게 하고,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데 인색하지 않게 한다. 이렇듯 단순하고 명쾌한 진리!

 

하지만 웃음에는 긍정적인 이미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허탈한 웃음도 있고, 슬픔 뒤에 밀려오는 웃음, 절망과 굴욕의 끝에 매달린 웃음도 있다. 예를 들어, 혼자 텔레비전의 코메디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는 웃음의 뒷맛은 그리 개운하지 않다. 한바탕 웃고 난 뒤에 약간의 씁쓸함과 알 수 없는 허망함이 밀려오곤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웃음에도 종류가 있다. 오늘 교육한 강사는 아마도 앞서 말한 긍정적이고 유쾌하며 뒤끝이 없는 상쾌한 웃음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것이리라. 하긴, 그런 웃음이야말로 모든 웃음 중의 최고이며, 그렇기 때문에 또 억지로라도 웃어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가장 웃기 힘든 웃음일 것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가 한 번이라도 그런 웃음을 웃은 적이 있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어색한 웃음을 지을 때처럼 얼굴이 굳어지고, 마침내 씁쓸한 웃음이 지어진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웃음을 사랑한다. 무시하고 비웃는 웃음을 제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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