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떠나는 자와 남겨진 자

시월의숲 2009. 12. 31. 00:49

바람이 무섭게 분다. 차가운 바람이 피부에 닿을 때면 비명이 터져나올것만 같다. 두꺼운 코트에 목도리를 칭칭 감고 있어도 차가운 공기와 매서운 바람의 무차별 공격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이런 날, 직장 동료들과 함께 술집에 가서 술을 마셨다. 떠나가는 동료들을 위한 송별식이었다. 짧게 혹은 길게, 나와 함께 일을 했던 사람들과의 헤어짐은 서로에게 어떤 의미를 남기는가. 술을 마시면 안되는데도 몇 잔의 술을 마시며 헤어짐의 씁쓸함을 달래는 것은 비단 떠나가는 사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남겨진 자는 남겨진 대로 떠나가는 자는 떠나가는 대로, 새로운 무언가에 새로이 적응을 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것 때문에 더 힘겨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회생활의 힘겨움은 일 그 자체에서 온다기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다는 사실 때문에. 하지만 이 시기가 지나가면 이러한 감정도 사그러들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사람에 대한 소문이 있다. 떠나는 자와 남겨진 자에 대한 소문. 암암리에 말해지고 있는 세간의 평판, 출처를 알 수 없는 풍문 같은 것들이, 실제로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 이미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되어 있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본다. 이는 주객이 전도된 경우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오해를 그 사람의 전부로 이해해버린다. 어떤 사람에 대해 누군가, 그 사람은 예의범절을 모르고 이기적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이미 그 사람을 보기도 전에 그 사람을 예의범절을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규정지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과 실제로 만나게 된다면, 사람들은 그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무례함과 이기심의 징표들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여념이 없을 것이다. 그래그래, 그가 숟가락을 먼저 드는 걸 봤지? 혼자 따뜻한 난로가에 서서 다른 사람에게 온기가 가는 걸 막고 있더라고. 또 그 표정은 어떻고? 사람을 업신여기는 듯한 눈매와 비웃는 듯 보이는 입꼬리를 봤지? 등등.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 또한 타인에게 소문으로 인식되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풍문으로만 존재하는 우리들. 발이 없는 풍문이 발 있는 사람들을 압도하고, 결정지어버리는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나 또한 나 자신에게조차 풍문으로 존재하는지도 모르는데!

 

떠나고, 남겨진 자들의 모든 쓸쓸한 발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는 정녕 힘든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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