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바닷가 마지막 집

시월의숲 2010. 3. 18. 16:58

1.

이사를 했다. 버스가 일찍 끊기는 곳이라 퇴근 후에 서둘러야만 한다. 지금은 다행히 카풀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게 더 신경 쓰이는 일이다. 그냥 다른 사람 눈치 볼 것 없이 나 혼자 다니는 것이 마음이 더 편한데. 이런 마음을 그 사람에게 전한다는 것 자체가 더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카풀을 하기도 하고 버스를 타기도 하면서 직장에 다니고 있다.

 

 

2.

처음 이사를 하려고 이삿짐을 싸는데 생각보다 많은 양의 짐이 나와서 놀랐다. 맨 처음 내가 이곳에 올 때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양이었다. 이곳에 와서 텔레비전도 사고, 컴퓨터도 사고, 옷도 샀지만, 그것들을 제외하고서라도 너무나 많은 양의 짐이 생겨버려서 이사하는데 힘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절실히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인데, 나는 무엇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계속 가지고 있었던가? 지금부터라도 버릴 건 버리면서 차차 짐을 줄여나가야겠다. 언제라도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도록.

 

 

3.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이 떠오른다. 돌아가시면서 자신의 모든 저작물들을 출판하지 말라고 했다지만, 중생들은 오히려 <무소유>를 소유하려고 야단법석이다. 이것이 한 사람의 죽음이 가지는 힘인가, 아니면 우리가 어리석기 때문인가. 하긴 김수환 추기경도 법정 스님의 <무소유>만큼은 소유하고 싶다고 했으니,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그리고 법정 스님이 말한 무소유라는 것도 모든 것을 소유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최소한도로 필요한 것들만을 소유하라는 말이라는 것도. 나는 불필요한 것들을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4.

새로 이사한 방에서 창 밖을 내다보면 시야 가득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사실 그것 때문에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바다를 볼 수 있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바다를 볼 수 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일기장에 적었던 말. 눈이 부르트도록 바다를 볼 수 있을 거라는 말이 이제서야 실현이 되었다. 사실 그동안은 바닷가가 근처에 있었으면서도 차를 타고 나가지 않는 이상 바다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전경린의 단편 소설의 제목이었던가? '바닷가 마지막 집'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그런 집.  이 곳에서 나는 나를 좀 덜어낼 수 있을까? 좀 가벼워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