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는 일을 하기엔 조금은 맞지 않는 부류의 인간

시월의숲 2010. 3. 11. 00:16

내가 가입한 어느 카페에서 누군가 말했다. 자신은 타인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일을 하기엔 맞지 않은 부류의 인간이 되어버린것 같다고. 이 말은 자신이 예전처럼 누군가 카페에 올린 글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게 되고, 그들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표현하는 일에 힘겨워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예전에는 그리도 아파하고, 흥분하고, 설렜던 일들이 이제는 바위처럼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분명 슬픈 일이다. 나는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그 사람의 말에서 큰 슬픔을 느꼈다. 나이를 먹어 간다는 사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들이 무덤덤해진다는 사실이 순간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종종 시간이 아주 많이 흘렀으면 하고 바라지 않았던가? 세상의 모든 일들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 초연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때론 몹시도 바라지 않았던가!

 

젊음의 생동감과 넘치는 감수성이 사라지고 난 뒤,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마음 속 깊이 우러나오는 초연한 눈빛을 가지기 위해서는 젊음의 모든 광휘를 바치고 난 후 밀려오는 슬픔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감히 바란다. 설사 내 안의 무언가가  빠져나가버려서 어느 순간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는 일을 하기엔 맞지 않는 부류의 인간'이 된다 하더라도 슬퍼하지 않으리라,고. 이미 세상의 모든 것들(사물과 사건, 관계)은 슬픔으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는 단지 좀 '더' 슬퍼하거나 좀 '덜' 슬퍼할 수 있을 뿐. 그렇게, 그렇게 슬픔의 강을 건너가야지. 우리 서로 슬픔의 손을 맞잡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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