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시월의숲 2010. 3. 22. 20:41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파도소리가 들린다. 밀물과 썰물의 움직임과 부서짐, 하얀 포말 같은 것들이 마치 손에라도 잡힐듯이. 넓고 푸른 바다. 한참을 그렇게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쓸쓸함도 고독함도 차차 옅어지는 것을 느낀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너는 혼자가 아니야, 그렇게 바다는 속삭인다. 그러면 나는, 혼자여도 괜찮아, 혼자여도 괜찮아, 하고 대답한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바다는 내 이런 마음조차 포용하는 것이다. 나약한 심성도, 떨리는 가슴도 자신의 저 넓은 손으로, 아무런 말없이. 그렇게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파도소리를 자장가 삼아 나는 잠이 든다. 누군가 그랬지.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 것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외톨이로 여겨지는 것'이라고. 혼자 있어 외로운 것이 아니라 혼자 있지 못해서 외로운 거라고. 인간들이 아무리 많아도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그렇게 많은 인간들 속에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외로움은 바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외로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어야 할까? 그럴수만 있다면. 나는 가끔 꿈꾼다. 일체의 모든 관계를 끊어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하지만 그것은 곧 죽음과도 같은 것일지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신에게로의 은둔? 나는 죽음이나 신앙으로도 온전히 내 몸과 마음을 던지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그만큼 나약하고, 비겁한 것이다. 내가 잘 하는 것은 언제나 미적지근한 타협과 굴종 뿐. 외로움과도 적당히 타협을 하면 될 일이다. 어찌할 것인가? 나는 그렇게 태어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인데. 나는 나를 모르지만 그만큼 나는 나를 잘 안다. 나는 용기가 없다. 하지만 바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하얗게 부서질 뿐. 철썩, 처얼썩 몸을 뒤척일 뿐.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인다. 내 몸 속에 파도소리가 차곡차곡 쌓인다. 나는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