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이승우, 《한낮의 시선》, 이룸, 2009.

시월의숲 2010. 5. 6. 20:12

"사람은 근본적으로 무언가를 찾고 추구하는 존재거든. 때로는 자기가 무얼 찾는지, 왜 추구하는지도 모른 채 찾고 추구하지. 몽유병 환자처럼 말이야. 찾다가 못 찾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추구가 의미 없는 건 아니지."(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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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원치 않는 대상과 원치 않는 방법으로 대면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지냈지만, 그 불안감이라고 하는 것에도 무언가 수상한 구석이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원치 않아 하면서도, 실은 원치 않는 대상과 대면하지 못하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이다. 원치 않는 대상과의 조우를 원한다는 게 말이 되는 걸까. 나는 원하지 않으면서도 정말로 원하지 않는 대로 될까 봐 불안해하고, 원하면서도 정말로 원한 대로 될까 봐 마음 졸이고 있는 것 같았다.(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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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단순한 음절의 모음이 아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혀와 바람의 단순한 작용일 수 없다. 이름은 존재의 영혼과 같은 것.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 존재를 긍정하고 인정하는 일이다. 이름을 부를 때 우리의 영혼은 그 존재의 영혼과 맞닿는 경험을 한다. 어떤 이름은 입술에 올리는 것만으로 황홀하고 설렌다. 어떤 이름은 혀에 올리기도 전에 거부감으로 미리 근육들이 경련을 일으킨다. 어떤 이름은 흥분하게 하고 어떤 이름은 가라앉게 한다. 차마 부를 수 없는 이름도 있고, 마지못해 부르는 이름도 있다. 영혼이 부딪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들이다.(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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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화내는 표정의 가면을 향해 싸움을 걸지 않는 것처럼 웃는 표정의 가면을 향해 호감을 표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가면이 스스로 화를 내거나 웃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갗 안쪽의 근육을 이용해 표정을 만든다. 그 근육과 살갗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이다. 표정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데 가면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가면은 다만 덧씌워질 뿐이다. 마음의 지배를 받지 않기 때문에 견고한 것이 가면이다.(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