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헤르만 헤세, 《데미안》, 문예출판사, 1999.

시월의숲 2010. 3. 25. 22:50

만일 네가 누군가에게 뭔가를 얻고자 할 때 무조건 아주 지그시 그의 눈을 들여다보고, 그가 하나도 불안해하지 않거든 바로 단념해버리란 말야! 그런 사람에게서 넌 결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런 일은 매우 드물지.(99~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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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부 세계에 대하여 매우 냉담한 태도를 취했으며, 온종일 나의 내부에만 귀를 기울이고 거기 나의 내부의 밑바닥에서 졸졸거리고 있는 금지된 어두운 냇물 소리를 듣는 데 골몰했던 것이다.(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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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하여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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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열과 공포, 남성과 여성의 혼합, 성스러운 것과 몸서리쳐지는 것과의 뒤엉킴, 다감한 천진성을 뚫고 경련하며 지나가는 깊은 죄악. 내 사랑의 꿈의 영상은 이러했다. 그러기 아프락사스도 역시 그러했다. 사랑은 더 이상 내가 처음에 불안스레 느꼈던 것처럼 동물적인 어두운 충동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내가 베아트리체의 초상에게 바쳤던 것처럼 경건하고 정신화된 숭배도 아니었다. 사랑은 그 양쪽 다였다. 양쪽 다였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천사의 모습인 동시에 악마였고, 남성과 여성이 하나가 된 것이며, 인간과 동물, 최고의 선이자 극단의 악이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나에겐 정해진 일로 생각되었고, 이것을 맛보는 것이 나의 숙명인 것처럼 여겨졌다. 나는 그것에 대해서 동경을 품고, 그것에 대하여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꿈꾸고 그것에서 도망을 쳤다. 그런데 그것은 언제나 실재하고 있어서 항상 나의 머리 위에 있었다.(162~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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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나는 내부에서 스스로 나오려는 것대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은 왜 그다지도 어려웠던가?(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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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죽이고 싶어하는 그 사람은 사실상 결코 아무개라고 정해져 있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가장(假裝)에 불과할 거야.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하는 경우는 대개 그의 형상 속에서 우리들 자신의 내부에 있는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의 내부에 없는 것은 우리를 흥분시키지 못하니까.(194~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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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있어서 인류란 -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사랑하는 인류란 -  유지되고 보호받아야 되는 완성된 그 무엇이었다. 그에 반해 우리들에게 있어서 인류란 우리가 모두 그것을 향한 도중에 있고, 그 모습을 아는 사람이라곤 없으며, 그 법칙이 적혀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는 그러한 아득히 먼 미래인 것이다.(250~2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