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이별의 시간

시월의숲 2010. 6. 28. 23:48

역시 좋은 것은 오래 취할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일까? 울진에 온지 일 년 팔 개월 만에 울진을 떠나게 되었다. 처음 이곳에 와서 업무에 적응을 하고, 사람들을 사귄지가 엊그제 같은데, 겨우겨우 익숙해질만 하니까 벌써 이별이다. 이곳에 오는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 오기를 꺼려하고, 와서는 하루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한다는데, 이상하게 나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집에서 많이 떨어져 있고, 혼자 고립되어 있는 느낌이 좋아서, 불영계곡을 지나가는 구비구비 산길이 험난하고도 아름다워서, 지척에 출렁이고 있는 바다가 어딘가 부족한 허기를 채워주는 것 같아서 그래서 그냥 마음이 끌렸는데 이별이라니. 타의에 의한 이별은 아니다. 나 스스로의 결정에 의한 이별이다. 하지만 그 결정이 그리 쉽게 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이곳에 얼마간 더 있을 줄 믿고 있었던 것이다.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서 이곳도 언젠가 떠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떠나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보니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쳐서  한동안 멍해지고 말았다. 어디로 갈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이곳보다는 다른 곳, 여기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마음은 그랬다. 하지만 떠나야 한다는 사실과 새로운 곳에서 새로이 적응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적잖은 부담으로 나를 압박한다. 울진이 육지의 섬이라는 무척이나 시적인 별칭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그러한 별칭만큼이나 아름다운 곳이라는 사실또한 거부할 수 없는 압박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술을 마신 탓도 있겠지만(마시면 안되는데!), 업무 인계인수 때문에 요며칠 무척이나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떠나려고 일을 마무리 짓는데 이상하게도 해야 할이 자꾸만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마무리는 지어지지 않고 일이 자꾸 커지는 지경에 이르렀으나 겨우겨우 갈피를 잡고 일을 해나갈 수 있었다. 떠나는 일이나 정착하는 일이나 힘들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요일에는 집을 알아보기 위해 동분서주 했고, 오늘도 업무를 잠깐 하다가 집에 들어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사택에 들어온지 불과 4개월도 채 안되었는데 떠나야 한다니 무척이나 아쉽다. 바다가 보이는 집을 구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짐을 싸면서 2년 가까이 생활했던 이곳에서의 생활도 정리를 한다. 내일과 모레는 정신없이 바쁠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새로이 살게 되는 집에서 다시 블로그에 접속할 수 있게 되기까지 당분간은 인터넷도 하지 못하겠지. 천천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에 너무나 급박한 이별이다. 아니, 이별이란 이별 후에 천천히 돌아보게 되는 어떤 것일까? 어쨌든 지금은 이별과 정리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