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태양보다 뜨거운 것

시월의숲 2010. 7. 20. 21:49

 정말, 내 손에 총이 있었다면 방아쇠를 당겼을지도 모른다. 작열하는 저 태양 때문에. 총구가 겨누어진 그곳에 누가 있는지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당연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오로지 저 무겁고도 뜨거운 태양만이 존재하는. 이방인, 뫼르소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나날들. 그래도 아이들은 그늘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태양의 둥근 선을 닮은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뜀박질을 한다. 그들의 옷은 이미 땀과 흙으로 뒤범벅된 지 오래지만 무엇이 그리 좋은지 운동장이 떠나갈듯 웃고 또 뛴다.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는 아이들에게 아무런 제약도 가하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저들이 가진 열기가 태양보다도 더 뜨겁기 때문이리라. 태양보다 더 뜨거운 열정와 심장을 가진 아이들. 저들의 순진무구함과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자유분방함을 그 무엇이 압도할 수 있단 말인가? 저들은 뫼르소가 방아쇠를 당기든 말든 아랑곳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왜 방아쇠를 당겨야 했는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태양이란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그저 태양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얼마나 거대한 열기를 뿜어내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자신도 모르게 뿜어져나오는 열정이 태양을 압도하고 있는데! 에어컨과 선풍기를 틀어놓고도 덥다고 아단법석을 떠는 나를 땀에 전 얼굴로 휙 쳐다보고 가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아이들은 한여름 오후 두 시의 태양을 닮았다. 아니, 아이들은 한여름 오후 두 시의 태양보다 더 뜨겁다.

 

그런 아이들을 뫼르소가 봤다면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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