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오랜만입니다

시월의숲 2010. 8. 8. 21:31

각자가 가진 어둠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 어둠을 개개인이 지닌 상처라고 해도 좋고, 고민이라 해도 좋고, 무거움, 고통, 고독, 아픔, 절망이라 해도 좋다. 그 모든 것들이 다 포함되어 있는 것. 그런 구멍을 우리는 모두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가 보다. 오늘 작은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어렸을 때 명절 때나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 생신때 보았던 작은 아버지. 그렇게 가끔씩 만날 때면 조카인 우리들을 데리고 산에도 가고 놀이공원에도 데려가고, 낯설었던 페스트 푸드점에도 데리고 갔던 작은 아버지. 늘 어디 가고 싶냐고,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물어보았던 작은 아버지. 수도권에 살면서 제법 돈도 모으고 잘 사는 것 같던 작은 아버지. 다른 가족들이 보기에 무엇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작은 아버지인데, 오늘 나에게 전화를 걸어 술에 취한 목소리로 고민이 많다고 했다. 무슨 고민인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늘 고민 속에 살아왔다고 고백아닌 고백을 하는 작은 아버지. 나는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냐고, 이제 그만 고민하고 살라며 김빠진 대답을 해주었지만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돈이 많으면 절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속물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가족이란 무엇인지.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왜 그렇게 고민을 하는 것인지. 가족이란 그렇게 쉬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아, 이건 내 짐작일 뿐이다. 작은 아버지가 무슨 고민으로 술을 마시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어찌 알 수 있을까?

 

진정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각자가 가진 어두운 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 자주는 아니더라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는 것? 내 목소리를 내 가족들에게 들려주는 것? 얼굴을 보는 것? 그 모든 것들이 괴로운 일이라 하더라도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작은 아버지의 고민이 과연 무엇인지. 들여다보면 사실 아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엄청나게 큰 어려움이라 하더라도 사실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실마리를 얻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경험하지 않았던가. 뜨거운 폭염도 녹이지 못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가운 얼음벽을 깨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송곳만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서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하며 부대끼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사랑이 필요하겠지. 서로 얼굴을 보려는 의지와 이야기를 하려는 의지가. 그런 최소한의 의지만 있다면 우리에겐 아직 희망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작은 아버지, 너무 고민하지 말고 우리 서로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해요.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최소한의 사랑은 있다는 것이니까, 너무 상심하지 말아요. 아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