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카르페 디엠

시월의숲 2010. 8. 29.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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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통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 이제 조금 여유가 생긴 것 같은데도 여전히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날씨 탓인가. 하긴, 이런 말, 이런 푸념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나는 언제나 책을 잘 읽지 못했고, 언제나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읽지 않는 것은 무슨 심보일까? 읽지 않는 책이 쌓여가고 있다. 그래도 손에서 책을 놓은 것은 아니다. 틈틈히 읽고 있긴 한데 진도가 잘 나가질 않는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아직 <엄마를 부탁해>를 읽지 않았지만 어째 그것보다는 이번 책이 더 끌려서 읽게 되었다. 크게 히트한 책은 눈이 잘 가지 않는 심리가 있는 것일까? 많게는 하루에 서른 페이지, 적게는 두 세 페이지 정도 읽다가 접어두곤 한다. 5분의 1정도 남았는데 서두르지 않을 작정이다. 느긋하게 마음이 내킬 때 읽으면 될 것이다. 아마 다 읽고나면 책에 대해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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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사십 년이라는 세월을 한 직장에서 근무하다가 퇴임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며칠 전 한 퇴임식 축하연에 참석했는데, 그 퇴임식의 주인공은 한 직장에서 사십 년 동안 근무하다가 퇴임하는 사람이었다. 참석한 사람들 모두 그를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는 박수를 보냈다. 그는 박수에 답하듯 짧막한 연설을 시작했다. 다들 나에게 퇴임하면 무얼 할 것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나는 무얼할지 모르며, 반드시 무얼 해야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십 년간 한 직장에서 근무했지만 퇴임하는 이 순간 하나도 아쉬운 것이 없다. 물론 직장생활을 하면서 즐거움도 있었고, 좌절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직장을 떠나는 것에 일말의 미련도 남아있지 않다. 오히려 큰 짐을 내려놓는 것 같아 시원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퇴임을 하면 아무래도 사람들과 조금씩 멀어지게 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못내 아쉽긴 하지만 다른 것은 없다. 순간순간을 즐기며 살면 된다. 현재를 즐겨라. 그렇게 말하며 그는 짧은 연설을 마무리했다. 마지막 말을 마치는 그의 얼굴에는 설명하기 힘든 감회와 아쉬움, 시원함이 어른거렸다. 그의 말은 아마도 진심일 것이다. 사십 년간의 직장생활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따윈 없을지도 모른다. 사십 년이란 그리 길지만은 않은 세월인 것이다. 그런 세월 동안 오로지 현재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그의 철학 앞에 과거의 의미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일 것인가. 문득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이 생각났다. 그래, 현재를 즐길 것. 그것이 사십 년 후에 '최소한의 후회'를 남길 최선의 방법임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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