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신경숙,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문학동네, 2010.

시월의숲 2010. 9. 3. 21:04

- 여러분은 각기 크리스토프인 동시에 온갖 고난을 헤쳐나가며 강 저 편으로 건너가는 와중에 있네. 내가 이 이야기를 한 것은 종교 얘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야. 우리 모두는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차안에서 피안으로 건너가는 여행자일세. 그러나 물살이 거세기 때문에 그냥 건너갈 수는 없어. 우리는 무엇엔가 의지해서 이 강물을 건너야 해. 그 무엇이 바로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들이기도 할 테지. 지금 여러분은 당장 그것이 여러분을 태워서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게 해주는 배나 뗏목이 되어 줄 것으로 생각할 거야.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것이 여러분을 태워 실어나르는 게 아니라 반대로 여러분이 그것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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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일은 스쳐간 생각을 불러오고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바라보게 했다. 두 발로 땅을 디디며 앞으로 나아가다보면 책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숲길이 나오고 비좁은 시장통 길이 등장하고 거기에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말을 걸고 도움을 청하고 소리쳐 부르기도 한다. 타인과 풍경이 동시에 있었다.(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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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간을 두고 오래전, 이라고 말하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어딘가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오래전, 이라고 쓸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되는 것들. 어쩌면 우리는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3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