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막스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 까치, 1985.

시월의숲 2010. 10. 18. 19:39

  침묵이란 그저 인간이 말하기를 그만둠으로써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침묵은 단순한 말의 포기 그 이상의 것이며, 단순히 자기 마음에 들면 스스로 옮아갈 수 있는 어떤 상태 그 이상의 것이다.

  말이 그치는 곳에서 침묵은 시작된다. 그러나 말이 그치기 때문에 침묵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그때 비로소 분명해진다는 것뿐이다.

  침묵은 하나의 독자적 현상이다. 따라서 침묵은 말의 중단과 동일한 것이 아니며, 그것은 결코 말로부터 분해되어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독립된 전체이며, 자기 자신으로 인하여 존립하는 어떤 것이다. 침묵은 말과 마찬가지로 생산적이며, 침묵은 말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형성한다. 다만 그 정도가 다를 뿐이다.

  침묵은 인간의 근본 구조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서 독자가 어떤 "침묵의 세계관"으로 끌려간다거나 독자가 말을 경시하도록 미혹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은 침묵이 아니라 말로 해서 비로소 인간인 것이다. 말은 침묵에 대해서 우월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말은 침묵과의 관련을 잃어버리면 위축되고 만다. 따라서 오늘날 은폐되어 있는 침묵의 세계는 다시 분명하게 드러내어져야 한다. 침묵을 위해서가 아니라 말을 위해서.

  사람들은 아마도 침묵에 대하여 무엇인가 말로써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이상스러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상스러워 하는 것은 다만, 침묵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무(無)로서 이해할 때뿐이다. 그러나 침묵은 "존재"이며 하나의 실체이며, 그리고 말이란 그 어떤 실체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말과 침묵은 서로에게 속해 있다. 말은 침묵에 관하여 알고 있고 마찬가지로 침묵은 말에 관하여 알고 있다.(15~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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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세계는 침묵의 세계 위에 세워져 있다. 말이 마음 놓고 문장들과 사상 속에서 멀리까지 움직여갈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밑에 드넓은 침묵이 펼쳐져 있을 때뿐이다. 그 드넓은 침묵에게서 말은 자신이 드넓어지는 법을 배운다. 침묵은 말에게는 줄타는 광대 밑에 펼쳐져 있는 그물과도 같다.(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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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자신의 본질을 철저히 자신의 형상으로 드러낸다. 동물은 겉으로 보이는 그대로이며, 그럴 수밖에 없다. 인간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일 수는 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인간은 말을 통해서 자신의 현상을 극복할 수 있으며 현상 이상의 것이 될 수 있다. 인간은 말 속에서 뚜렷하게 드러나며 동물은 자신의 형상의 침묵 속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1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