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시월의숲 2010. 11. 6. 15:27

아침, 저녁으로 추운 기운에도 불구하고 오늘 낮의 날씨는 가을을 느끼기 충분했다. 바람은 서늘하지만 적당히 시원하여 서글프지 않고, 낙엽들은 곧 잊혀질 기억의 조각들처럼 이리저리 뒹굴고, 햇살은 딱 적당할 만큼 따사로운 날의 토요일 오후. 이런 날은 유원지나 유적지, 바닷가를 찾아가지 않아도 마냥 좋을 날씨다. 그저 출퇴근길에 나있는 익숙한 거리를 걷거나,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풍경들을 마냥 바라보아도 좋을 그런 날씨. 익숙한 사람들과의 지루한 만남이나 아무런 생기를 찾아볼 수 없는 대화조차도 좋은 날씨 덕에 다 용서가 되는 그런. 골치아픈 일들을 다 잊어버릴 수 있게 만드는 날씨라고 해야할까.

 

남들은 이렇게 좋은 날 누군가를 만나지 않고, 어딘가를 가지 않는다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댄다. 이렇게 좋은 날에 집에 혼자 있어서야! 빨리 애인을 만들어서 그동안 못가본 곳도 가보고 맛있는 것도 사먹으면서 인생을 즐겨야지! 사람들은 입을 모아 하나같이 그렇게 말하지만 나는 사람들의 그런 관심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누군가 곁에 있다면 오늘 같이 좋은 날 어딘가로 함께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없으면 또 어떤가. 없으면 없는대로 즐기면 될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주말인데 여행도 가지않고 집에서 도대체 무얼 하는지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나를 향한 그런 궁금증이나 안타까움은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누구나 주말을 혼자 보내고 싶어하지 않을테니까.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굳이 누군가를 소개해 주려고 안달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매파임을 자처하는 사람들.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의 심리와 적극성을 때때로 참을 수가 없다. 왜 사람들은 타인의 개인적인 일에 그리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 제발 남의 일에 관심 좀 꺼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참으로 견디기 힘든 부류의 사람들 중의 하나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그런 관심은 노땡큐란 말씀!

 

그래도 거리를 걸으니 좋은 날씨 때문에 다 잊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쓸데없이 과도한 관심으로 나를 불편하게 했던 그 사람에 대한 짜증조차도. 아마도 내가 사랑하는 것은 이런 것들, 바람, 햇살, 낙엽 같은 것들이 아닐까?

 

그러니 제발 조용히 좀 해요, 낙엽이 뒹구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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