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혐오의 뿌리

시월의숲 2010. 11. 19. 21:01

어떤 사람, 어떤 상황, 어떤 문화, 어떤 취향, 어떤 본성... 왜 사람들은 유독 '어떤' 것에 그리도 열광을 하고 '어떤' 것에는 그리도 혐오를 하는 것일까. 그들이 혐오해마지 않는 것들. 사람들이 품는 이해하기 힘든 혐오감과 증오심의 뿌리에는 도대체 무엇이 존재하고 있기에 그리도 입에 담지 못할 말과, 어처구니 없는 논리와 겉잡을 수 없는 공격성과 단죄의 욕망을 들끓어 오르게 하는 것일까. 윤리와 도덕? 윤리와 도덕도 모두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문화가 만들어낸 산물일 뿐인데, 왜 어떤 이들은 그리도 그것에 얽매여 정작 중요한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마저 망각해버리는 것일까. 마치 기독교 근본주의자의 비뚤어진 신념과 러시아의 인종차별주의자의 믿을 수 없이 단순한 폭력성과,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 동성애자가 된다고 말했던 한 어머니의 어처구니없는 무지처럼 말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비롯한 다른 모든 이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어떤 것들을 단지 그것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그것이 자신의 생각과 윤리의식 혹은 취향이나 성향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참히 그것을 짓밟고 혐오하며 침을 뱉고 돌을 던지기를 서슴치 않는다. 그럴 권리가 그들에게 있는가, 나는 묻고 싶다. 그들은 떼지어 몰려다니는 깡패나 테러리스트, 혹은 전쟁광과 같다. 빛나는 무지를 자랑스럽게 어깨띠처럼 두른 그들. 살인과 범죄란 누군가를 말그대로 죽인다거나 눈에 보이는 죄를 짓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말없는 무관심이나, 멸시에 가득 찬 눈동자와 공격적인 말투, 충고나 위로 속에 담긴 혐오나 비난, 악의적인 장난이나 무지로도 누군가를 죽일 수 있고, 그래서 그것은 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로지 가해자만이 그 사실을 모를뿐. 왜냐하면 그들은 당당히 다수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다수라는 익명에 몸을 담그고 있는 그들에게 소수에 속하는 사람들은 모두 비정상인이거나, 환자, 테러리스트, 돌연변이, 범죄자일 뿐이다. 인정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 나는 그런 그들이 불쌍하다. 신흥종교집단의 광신도를 보는듯한 슬픔. 하지만 어찌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유독 '어떤' 것에 관해서 극렬한 혐오의 반응을 보인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향햔 것이리라. 그 혐오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 증오가 격렬하면 격렬할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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