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자유로이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시월의숲 2010. 11. 13. 00:38

신경숙이었던가? 아마도 <외딴방>이란 소설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였던 것 같다. 자기가 쓴 소설을 가장 많이 읽어보는 사람은 아마도 자기 자신일 거라는. 그것이 <외딴방>이란 소설에만 국한되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그녀 자신이 쓴 모든 소설에 해당되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습관이 비단 작가인 그녀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작가도 뭣도 아니지만, 내가 내 블로그에 쓴 일기 비슷한 것들을 가장 많이 읽어보는 사람은 아마도 나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지난 글들을 읽어보고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는 일이 내겐 무척 소중한 일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내가 아니라면 누가 내 글을 이렇게 공감하면서 읽어볼 것인가? 때론 웃길 정도로 심각하고, 도대체 맞춤법이란 어디에 쓰는 것일지 모르게 엉망이기도 하며, 혼자 있으면서도 얼굴을 붉힐 정도로 읽기 민망한 글을.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예전에 내가 썼던 글을 읽어 볼 때의 그 낯뜨거움. 그래도 상관없다. 낯뜨거우면 낯뜨거운대로 두 눈을 부릅뜨고 읽어나간다. 그 민망함의 실체가 무엇인지 밝혀내기라도 해야겠다는 듯이.

 

아,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쓴 글의 일정한 패턴에 관해서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나는 글의 맨처음을 날씨 이야기로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우선 그날의 특징적인 날씨에 관해서 이야기한 다음, 그런 날씨에 따른 상황이나 심정의 변화를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이다. 짧지만 인상적인 글을 쓰고 싶은 내 바람과는 달리, 진부한 날씨 이야기로 시작하는 글이라니. 내 글의 최대 독자인 내가 읽기에도 한결같은 날씨 이야기에는 그만 지겨워지고 만다. 그래서 생각했다. 왜 나는 늘 날씨 이야기로 시작을 하는 것일까? 무미건조한 일상에 날씨가 가장 큰 테마이기 때문에? 날씨 외에는 내 주위를 끄는, 인상적인 사건이 없어서인가? 어쩌면 나는 글을 쓰는 것을 힘겨워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떤 말이든 하고 싶은데 그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막막한 것이다. 그래서 일단 날씨나 계절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 처음 만난 사람에게 안녕, 하고 인사하듯 그렇게 건네고 보는 것이다. 마치 생애 처음으로 말문이 트인 아이처럼. 그 이후부터는 좀 더 자연스레 이야기를 해나갈 수 있다. 그 이야기가 처음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해도(대부분의 경우가 그렇지만) 어떻게 해서든 끝은 나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시작이 어렵다는 말인가.

 

처음 생각했던 몇 가지의 생각이나 느낌을 몇 개의 문장이나 단어로 우선 표현하고 나면 그것이 어떤 내용의 완결된 글이 될지 나도 알 수 없다.  처음에 들었던 생각이 글을 쓰면서(타자를 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꾸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생각의 깊이가 얕아 표현하는데 한계를 느끼기 때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갖다 붙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갖다 붙인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어떤 완결된 형태를 이루고 있다면 괜찮겠지만(어떤 하나의 주제를 구현하고 있다면 더더욱 좋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흔하지 않던가. 그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는 표현은 다른 말로 한 가지 생각을 깊이 우려내어 표현해낼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과도 같은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내가 내 글을 아무리 많이 읽어본들 다 무슨 소용인가? 깊어지고 넓어지지 않는다면. 읽고 쓰지 않는다면. 결국 노력하지 않는다면.

 

나는 내 글이, 내 이야기가 깊은 물 속을 자유로이 유영하는 물고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늘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기러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다 가끔 다른 이들의 가슴 속에서 아주 잠시 머물다 갈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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