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그것은 꿈이었을까

시월의숲 2010. 12. 3. 21:02

어젯밤에는 놀랍고도 무서운 꿈을 꾸었다. 거울 앞에 선 내가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거울 속 내 얼굴이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 정확히 말해 내 아랫입과 아래턱이 합죽이처럼 윗입술 쪽으로 붙어버린 것이었다. 순간 틀니를 뺀 할아버지의 얼굴이 생각나 얼른 입을 벌리고 그 속을 들여다보았는데 아랫니가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놀랍던지. 나는 꿈을 꾸면서도 이것이 꿈이길 간절히 바랐다. 어서 깨어나 직접 내 이빨을 확인해보며 안도하고 싶었다. 어서 깨어나, 어써 깨어나기를. 다행히 꿈에서 깨어난 뒤 급격한 놀라움은 가라앉았지만 이후로 한동안 다시 잠들지 못했다. 어쩌면 꿈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한 순간의 생각이었거나, 착각 혹은 망상이었는지도. 하지만 실제적인 고통과 놀라움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그것이 꿈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것이 꿈이었다는 말인가? 그렇게 생생하고 강렬한, 가슴을 찌르는 불안과 고통이? 단순히 이가 사라져버린 꿈이라고 하기엔 그것이 내 안에서 불러일으킨 불안이 너무나도 컸다. 때마침 창밖에서 들려오는 격렬한 바람소리가 그 불안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무엇 때문에 나는 불안을 느끼는가. 나는 내가 느낀 놀라움과 불안의 정체가 궁금했다. 하지만 나는 그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싫고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그것이 내 무의식의 발로라거나 무슨 징조라거나 하는 어설픈 말들을 하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자면서 느꼈던 한순간의 강렬한 감정의 체험을 그저 기록해 두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그 바람. 밤의 한가운데, 악몽에서 깨어난 후 들려온 바람소리에 대해서도. 어느 먼 공간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다가도 베란다 앞 커다란 밤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소리 같기도 한 그것. 전쟁의 위협과 구제역의 확산으로 어수선한 인간들의 세계를 위협하는 듯한 그 소리. 혹은 내 속에서 깨어난 불안이 내는 소리 같기도 해서 나는 더욱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움츠리면 움츠릴수록 더욱 커져가는 불안의 구멍. 뻥 뚫린 그 구멍 속으로 바람이 세차게 드나든다. 그 구멍은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 불안이나 공허의 성분은 다름아닌 바람, 아니 바람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을까? 아니다. 바람은 아무런 소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소리는 바람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통과한 모든 사물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모든 사물들이 가진 불안과 공허와 고독과 공포가 내지르는 비명소리. 그래, 그런 것일지도.

 

그것은 꿈이었을까,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의 그림자였을까,

바람의 환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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