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쩌면 그곳은 아름다울지도

시월의숲 2011. 1. 30. 23:16

1.

차다. 서늘하다. 춥다. 날씨가 추워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유난히 길고 서글프게 느껴진다. 어제는 집에 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갔는데 버스에서 내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제 그 자리에는 버스터미널이 없다는 사실을. 며칠 전에 이미 버스터미널이 이전을 한 것이다.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나였지만 늘 타던 버스를 타고 늘 내리던 곳에 내리고 말았다. 화가 난다기 보다 어이 없는 웃음이 나왔다. 몸의 기억이 머리의 기억을 따라가지 못하다니. 습관이 무섭다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하지만 어쩌랴. 다시 반대편 버스를 타고 갈 수밖에. 몸에 밴 습관은 그렇게 몸으로 다시 익히면 될 것이다. 좀 수고스럽지만 어쩔 수 없겠지.

 

 

2.

예전에 받았던 편지를 다시 읽는다는 건 어쩔 수 없이 사람의 마음을 감상적으로 만든다. 나는 한없이 감상적이 되고 싶었거나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싶었던 것이 분명하다. 갑자기 오래전에 주고 받았던 편지 생각이 간절했던 걸 보면. 요즘은 거의 주고 받을 일이 없는 편지, 이미 편지 자체가 그리움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인, 그 편지 말이다. 학창시절 주고 받은 편지들은 모두 잘 지내고, 새해 복 많이 받고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라는 것들 뿐이다. 간혹 선생님한테서 받은 편지나 대학생이 되고 나서 군에 먼저 간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들이 있었다. 그리고 동생에게서 받은 생일축하 편지나 소소한 메모 같은 것들. 그런 편지들을 훑어 보면서 내가 무엇을 찾고 싶은 것인지, 무엇을 그리워 하고 싶은 것인지 생각했다. 과거의 기억들. 편지를 보내는 것도 실은 내가 편지를 받고 싶어서였음을. 그런데 그것이 왜 그렇게 서글프게 느껴지는 건지 모를 일이다. 누군가가 나를 생각하며 적은 편지를 내가 무척이나 그리워했다는 사실이. 이제는 과거의 것이 되어버린 설렘의 기억이 나는 때론 몹시도 그립다.

 

 

3.

야콥 하인의 <어쩌면 그곳은 아름다울지도>를 읽었다. 단순히 배수아가 번역을 했다는 이유로 이 책을 읽었다. 동독에서 태어나 통일 독일을 경험하고 미국에서 생활하기도 했던 유대인(이라고 해야겠지?)인 작가가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담담하게 서술해 놓은 책이다. 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어머니는 무척이나 매력적이고, 당차며, 유머러스한 인물이었다. 그렇게 그녀와의 기억으로 가득한 작가에게 그녀의 죽음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슬픔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겠지만 결코 침통하거나 어둡지는 않다. 소설의 제목으로도 짐작할 수 있지만, 소설의 맨 처음, 커트 보네커트의 소설 <제5도살장>에서 인용된 부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더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것. 엄마를 말할 때 이제는 과거형으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는 사실. 더 이상은 실제로 엄마의 모습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사실. 그것은 명백한 고통으로 순간순간 자신을 괴롭히겠지만, 그것조차 죽음이라는 기정사실 앞에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만 하는 고통이라는 것. 그리고 어쩌면 그곳은 아름다울지도 모른다는 것. 작가는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될지라도, 죽음을 상상할 수조차 없을지라도, 죽음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성숙한다. 그렇게 아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