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모든 직업은 우울하다

시월의숲 2011. 2. 11. 22:46

하루 종일 눈이 펑펑 왔지만 나는 그 눈을 감상할 조금의 여유조차 없었다. 며칠 째 계속된 야근으로 너무나 피로하고 머리가 무거웠던 것이다.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비비고 일어나 출근을 했지만 머릿속이 멍해서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커피를 마셔도 나아지지 않고, 위로와 격려의 말도 별 소용이 없었다. 이럴 때는 정말 누군가와 한없이, 아무 생각없이 웃고 떠들어야 하는건데. 하지만 그건 지금의 내게 있어 크나큰 사치일 뿐이다.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는 업무와 사람들의 소소한 부탁과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목소리. 하지만 이런 것들은 참을만하다.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강박증에서 비롯된 강요와 이해하기 힘든 화다.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심각하게 화를 내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마치 금방이라도 경찰이 튀어나와 자신을 잡아가기라도 할 듯이. 내 스트레스는 바로 그런 사람이 바로 내 상사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상사라는 말은 내가 그의 부하직원이라는 뜻이고, 부하직원이라는 말은 내가 그의 말에 따라야 한다는 의미이며, 그건 다시 말해서 상사가 시키는 일은 싫어도 해야한다는 말이다. 싫어도 해야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하겠지만 끊임없이 똑같은 말을 수십번 반복해서 지껄이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일을 해야하는 건 정말 내 참을성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처음에는 내가 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서 나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라고만 생각했다. 세상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일을 하며 그들도 모두 나와 같은 처지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면서 지금의 자리에 올랐을 것이 아닌가. 그렇게 나 자신의 나약함을 탓하며 마음을 다잡으려 했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내가 싸워야 하는건 내가 맡은 업무 뿐만이 아니라 강박증과 조급증, 완벽주의와 철저한 책임의식이기도 했다. 배수아는 자신의 소설에서 모든 직업은 우울하다고 썼다. 문맥을 떠나 백퍼센트 공감한다. 이러다 우울증에 걸리는 건 아닌지 심각하게 걱정이 된다. 어떤 한 사람 때문에! 하지만 이 따위 것쯤, 내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위해서 반드시 싸워 이기리라. 떠난다는 말은 이기고 난 후에야 당당히 꺼낼 수 있는 말일 것이다. 그 우울이 은퇴와 죽음 말고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우울일지라도 절대 나약해지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