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엄살은 이제 그만

시월의숲 2011. 2. 22. 22:53

내가 원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좀 더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영감으로 가득찬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허영이 아니다. 나는 진실로 그런 가슴 설레는 것들, 하얀 도화지 앞에 선 화가처럼 한없이 막막한 기분과 그런 막막함을 뚫고 무언가를 표현해내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희열과 혹은 그 반대의 좌절 같은 것들을 몸소 체험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내가 해야하는 일이 무슨 일인지도 모른채 막연히 시험을 쳤고, 직장에 나가 아무런 의심과 조금의 주저도 없이 일을 해나간다. 의심과 망설임. 아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무런 의심과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던 것이다. 만약 그랬더라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조금의 의심과 망설임이 있었더라면 나는 아마도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고, 내가 원한 것은 이게 아니었다는 후회의 말도 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수단과 목적이 전도된 듯한 요즘의 나날들은 나를 깊은 고민에 빠지게 한다. 이건 내가 강하지 못하다는 증거일까. 단지 힘들다는 엄살일 뿐일까. 지금의 나를 지배하고 있는 건 일이다. 아무런 의욕도 느낄 수 없는 일. 아무리 해도 끝날 것 같지 않은 일. 아, 이런 불평, 불만들. 따뜻해진 날씨조차 마음껏 음미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프다. 나는 진정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것인가. 이것도 하나의 과정이라면. 그 과정 속에서 내가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결국 눈부신 햇살이 그 끝에 내리쬐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면, 숨쉬기가 조금은 수월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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