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카테리네 크라머, 『케테 콜비츠』, 실천문학사, 2004.

시월의숲 2011. 6. 4. 19:53

 

 

내가 언제 케테 콜비츠라는 이름을 들었고, 언제 그녀의 그림을 보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에 혹은 그보다 덜 오래된 과거에 나는 문득 그녀의 그림을 보았고,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 두었을 것이다. 그 그림을 미술관에서 본 적은 없으니 아마도 인터넷이나 어떤 책자에서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케테 콜비츠의 그림은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급기야는 내게 그녀의 전기를 찾아서 읽도록 만들었다. 흑백으로만 이루어진 단순한 선과 면. 하지만 보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강력한 힘이 그녀의 그림에는 있었다. 그녀를 수식하는 많은 말들을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저 그녀의 여러 연작 판화 중 한 점이라도 직접 보고 느끼라는 말 밖에는.

 

이 책은 그녀가 쓴 일기와 작품을 바탕으로 그녀의 삶과 예술을 조명한 전기다. 책을 읽는내내 작가가 말하고 있는 것들 사이사이에 인용된 케테 콜비츠의 일기가 마치 육성처럼 내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소외되고 힘없는 자들의 남루함과 불합리, 억압과 분노를 알았으며 그래서 그것을 예술로서 표현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내면의 꿈틀거림을 가지고 있었다. 이념의 대립과 파시즘, 전쟁의 시대를 겪었기 때문일까? 그 표현을 고발이라고 해도 좋고, 선동, 선전이라고 해도 좋다. 그것은 보는 이들의 눈과 발을 붙들고 한동안 놓아주지 않는다. 그녀가 그린 노동자들 특유의 굵고 투박한 손과,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 절망하고 슬픔에 잠긴 사람들의 구부러진 어깨와 아이들을 감싸안은 커다란 팔이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단순하면서도 직설적인 표현이 가진 매력이 유감없이 드러난 판화들. 그녀의 판화 속 인물들은 '과거에만 존재했던'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현재에도 존재' 하며 불합리와 폭력, 억압, 절망, 슬픔 등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듯 강렬하게 보는 사람의 마음을 붙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작품들이 많이 실려있지는 않다. 사실 화집이 아니라서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그녀의 작품집을 꼭 살 것이다. 물론 실제로 그녀의 작품을 본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까. 책에 실려있던 그녀의 일기 한 구절이 생각난다. '고통은 아주 어두운 빛깔이다' 라는. 그렇다. 그녀는 누구보다 고통을 알았으며 그것을 느끼고 표현할 줄 알았고, 그것과 대비된 밝은 빛깔에 대한 갈망 또한 강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민,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책표지에 새겨진 그녀의 자화상이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반쯤은 빛에 반쯤은 어둠에 잠긴, 깊고 아득한 시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