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이레, 2004.

시월의숲 2011. 9. 10. 23:00

 

 

 

1. 기대에 대하여

 

 

이 책은 주로 인터넷으로 구매를 하는 내가 드물게도 직접 발품을 팔아 산 책이다. 나는 무슨 기대를 가지고 이 책을 집어들었던가? 생각해보면 그리 거창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내 지갑 속에 도서상품권이 하나 있었고,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의 제목이 약간의 흥미를 돋우웠을 뿐.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는 알랭 드 보통의 팬이 되어버렸다. 약간은 염세적이면서도 섬세하고, 감성적인 작가의 글솜씨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문학과 미술, 철학을 아우르는 그의 박식함이 일상 생활의 어떤 지점과 만나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 낸다. 그 독특한 세계는 바로 우리의 일상이었고,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그로 인해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알랭 드 보통은 위즈망스의 소설을 예로 들면서 어쩌면 여행에 있어서 기대란 여행의 모든 것이 될 수도 있음을 말한다. 실제로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현실적이고도 심리적인 문제들에 부딛히게 되면,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면서 여행을 하려고 했는가, 그저 화려하고 이국적인 도시와 에메랄드빛 바닷가가 찍힌 멋드러진 사진을 보면서 기대에 찬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지 아니한가 하고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행을 방해하는 그 모든 현실적, 심리적 위협요소는 일단 접어둔 채 한껏 고조된 기대만으로도 충분히 여행가방을 싸고 기차나 비행기를 탈 수 있다. 후회는 그야말로 어떤 것을 행한 뒤에야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혹은 후회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일단 해보고 후회하는 편이 낫다고 말하는 것처럼. 기대는 확실히 인간들의 행동을 발동시키는 가장 큰 엔진임을 새삼 깨닫는다.

 

 

 

 

 

2. 여행을 위한 장소들에 대하여


 

여타 화려하고 흥분에 가득찬 여행기와는 달리 여행에 대해 차분히 생각하게 만드는 이 책은 우리가 여행을 할 때 결코 소개하지 않거나 쉽게 지나쳐가는 장소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바로 휴게소, 공항, 비행기, 기차 안 같은 장소들. 우리는 그 장소들을 그저 여행을 하기 위해 지나쳐야 하는 곳 이외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장소들이야말로 여행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고 새롭고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장소들이며, 어쩌면 우리가 여행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해야 할 장소들인지 모른다. 알랭 드 보통은 그러한 장소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 속에 담긴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인적이 드문 곳의 휴게소의 직원들과 낡은 간판의 카페와 역시 낡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여행객들, 비행기에서 바라본 지상의 풍경과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의 모양, 한 시간 뒤면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도착한다는 운송수단의 놀라움, 기차의 차창으로 빠르게 지나치는 풍경들... 알랭 드 보통은 그런 곳에서 시를 발견했고 이렇게 말했다. '이런 고립된 장소에서는 이미 터가 잡힌 일반적인 세상의 이기적인 편안함이나 습관이나 제약과는 다른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은연중에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3. 이국적인 것에 대하여



이번 장에서 알랭 드 보통은 귀스타브 플로베르를 가이드로 하여 여행에 있어서 이국적인 것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이국적이란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왜 이국적인 것에 끌리는가? 플로베르는 그의 모국인 프랑스의 부르주아적인 면을 혐오하면서 동양의 이집트를 자신이 생각하는 희망이나 행복의 종착점으로 생각하고 갈망했다고 한다. 이집트의 여인들과 상인들, 특유의 건축물과 낙타와 태양을. 그처럼 어떤 한 지역을 그렇듯 열렬히 원하기도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플로베르의 눈에 이집트는 프랑스가 가진 속물적이고 모순적인 면을 뛰어넘는 이상적이고 상징적인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플로베르처럼 그렇게 진지하게 외국의 이국적인 면을 열망하지는 않는 것 같다. 물론 심각하게 이민을 생각하거나, 모국에서의 삶이 불행했던 사람이라면 어떤 특정 지역의 문화와 자연에 대해 그곳이야말로 자신이 가진 이상이 발현된 나라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같은 경우,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네델란드란 나라에 대해 상당한 호감을 품고 있다. 그 나라의 개방적인 면이 나에게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것을 이국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플로베르의 경우를 생각한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과는 다른 환경, 풍경, 사람, 예술, 건물, 생각 속에 들어선다면 그곳이 어디인들 새롭고 아름답지 않을 수 있을까? 플로베르는 이집트를 유독 갈망했지만, 나는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라도 다 좋을 것 같다. 여행을 하면서 다른 나라의 이국성에 매료되었다면, 그건 자신이 속한 나라의 진부함과 고리타분함에 질렸다는 것과도 같은 뜻이리라.

 

 

 

 

4. 호기심에 대하여

 

 

여행을 할 때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가 있다면 그건 바로 호기심을 가지는 것이다. 그것은 여행을 할 때 준비해야 하는 것이 가방에 가득찬 옷과 안내책자, 지갑만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호기심은 우리가 새로운 곳에 갔을 때 느끼게 될 경험과 감동의 폭과 깊은 연관이 있다. 어떤 곳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면 우리는 알랭 드 보통이 예로 든 알렉산더 폰 훔볼트처럼 <신대륙의 적도 지역 여행>이라는 제목의 30권이나 되는 여행기를 쓸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야할 곳에 아무런 흥미와 호기심이 없다면 그곳은 안내책자에 나와 있는 설명 이상의 어떤 정보나 감흥도 제공하지 않는다. 호기심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거창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일단 사소한 것에서부터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본다면 그것이 다른 사소한 것과 연결되고, 그것이 다른 생각을 낳고 낳아서 거창한 사유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훔볼트의 경우가 그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 스페인의 마드리드에 와 있다고 해서 무슨 감흥이 있겠는가? 호기심이 없다면 마드리드의 거리는 대도시의 흔한 거리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리고 안내책자에 나와있는 유명한 장소들에 대한 설명은 우리들에게 그곳에 가면 바로 그러한 감동을 느껴야 한다고 무언의 강요를 하고 있는 것과 같다. 우리는 그곳에서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가? 어떤 감동을 받아야 하는가? 호기심은 안내책자에 적힌 암묵적 강요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것이며, 그러므로 사람마다 다 다르다. 훔볼트는 어떤 식물의 모양이 이 지역과 저 지역이 왜 다른가에 관심이 있었다. 우리는 그의 관심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우리가 관심있는 것들, 나 자신이 보기에 신기하고 이상한 것들을 찾으면 된다.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5. 시골과 도시에 대하여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시골에 사는 사람은 도시 여행을 즐길 것이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시골 여행에 흥미가 있을 것이라고. 알랭 드 보통에 의하면 예전에 영국 혹은 유럽에서는 시골로 여행을 하는 것이 그다지 보편화되지 않은 문화였다고 한다. 윌리엄 워즈워스가 시골에 가야만 볼 수 있는 풀벌레나 시냇물, 나무 등의 아름다움을 노래했을 때에도 당시 사람들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자연과 가장 밀착되어 있는 시골의 풍경과 그 아름다움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눈을 씻어주고 귀를 정화시켜 준다. 알랭 드 보통은 자연 속에서 그것을 느끼며 보낸 시간들이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의 진원지인 도시에서의 삶을 어느 정도 정화시켜주는 기능을 할 수 있음을 말한다. 물론 도시의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삶, 경쟁과 시기와 질투로 범벅된 삶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시골은 처음 얼마동안은 새롭고 평화로운 장소로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따분함과 지루한 장소로 탈바꿈 될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하여도 시골에서 보고 겪은 어느 한 순간의 이미지나 경험은 분명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짧게나마 여유를 가지게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음을 부정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어쩌면 자연의 그러한 기능 때문에 우리는 지금껏 삶을 무사히 영위해 왔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연을 극복 혹은 정복하면서 역사를 이루어왔지만 우리가 늘 위로받고, 치유받는 곳 또한 자연이라는 사실은 얼마나 모순적인 일인지.

 

 

 

6. 숭고함에 대하여

 

 

숭고함이란 무엇일까? 무엇을 숭고하다고 하는 것일까? 숭고하다는 말은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임과 동시에 그 뜻을 즉시 알아채기란 좀체 힘든 단어인 것 같다. 그러니까 그것을 설명하려고 하면 우선 여러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금방이라도 말로 나타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작 입으로는 뱉어지지 않는 묘한 단어 말이다. 그러니까 숭고함이란 아주 고상하고, 위대하고 거대하며 아름답고 경탄할 만한 무엇인가? 숭고함은 말로 표현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그저 몸소 체험할 수 밖에 없는, 단어와 그 단어가 나타내는 환경이 맞아떨어졌을 때에만 완전히 그것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그런 단어인 것 같다. 알랭 드 보통처럼 여행을 많이 다니다보면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될까? 웅대하고 장대한 풍경, 인간을 압도하는 거대한 자연 앞에서 섰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 말이다. 그러고보면 숭고함은 흔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아니다. 숭고함은 인간의 힘미 미치지 않는 거대한 힘을 가진 미지의 존재를 감지하게 한다. 숭고한 장소와 마주하였을 때 우리는 비록 무신론자라 하여도 우리를 지배하는 혹은 우리를 창조한 보이지 않는 신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을지 모른다.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세상이 불공정하거나 우리의 이해를 넘어설 때, 숭고한 장소들은 일이 그렇게 풀리는 것이 놀날 일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바다를 놓고 산을 깎은 힘들의 장난감이다. 숭고한 장소들은 우리를 부드럽게 다독여 한계를 인정하게 한다.' 어쩌면 숭고함이란 인간을 한없이 겸손하게 만드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7. 눈을 열어주는 미술에 대하여

 

 

여기에서는 미술이나 혹은 영화 기타 예술로 인해 우리가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풍경이나 심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반 고흐가 그린 사이프러스 나무는 우리가 실제로 보는 사이프러스 나무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준다. 알랭 드 보통은 프로방스 지역을 여행하면서 반 고흐가 그린 올리브 나무라든지 사이프러스 나무들을 실제로 보면서 이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그 나무들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이런 발견은 비단 미술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특정 장소들, 배경으로 지나치는 장면들이 어느 순간 새롭고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 속에 등장했던 장소들을 직접 찾아가 보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그림이나 영화를 통해서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파스칼은 그의 책 <팡세>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었다. "원래의 모습에는 감탄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닮게 그린 그림에는 감탄하니, 그림이란 얼마나 허망한가." 하지만 그림은 단지 자연을 재현만 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의 선택과 강조에 의해 재탄생된다고 봐야할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예술가들의 그러한 독특하고 새로운 시각이 현실의 귀중한 특징들을 살려내고 있는 점에 주목하면서 예술이 우리의 여행길에 있어 안목을 더욱 키워 줄 수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8. 아름다움의 소유에 대하여

 

 

제일 마음에 들었던 장이다. 아름다움의 소유에 대하여. 영국의 미술평론가이자 사상가인 존 러스킨을 등장시켜 여행에 있어 아름다움을 소유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한다. 그래, 우리는 우리의 여행을 더욱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에 대한 아름다움을 붙잡아두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사진으로, 그림으로, 글로써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 금새 사라져버리는 아름다운 풍경들과 새롭게 느꼈던 감정들을 어느정도 붙잡아 두는데 효과적이다. 존 러스킨은 데생의 기능을 설명하면서 비단 화가지망생이 아니더라도 데생은 여행을 하는 자들이나 사물을 좀 더 새롭고 잘 바라보고 싶은 자들에게 굉장히 유용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데생은 어떤 사물이나 풍경이 가진 아름다움을 좀 더 깊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나뭇잎이라고 하더라도 그 생김생김이 다 다르고, 늘 지나다니던 길이라고 하더라도 아침과 저녁, 흐린 날과 맑은 날이 다 다르다. 자연의 이러한 미묘한 차이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어떻게 포착하고 자신 안에 받아들일 것인가? 데생도 물론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확실히 그 아름다움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에는 '말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 있다. 말하자면 말, 언어로 데생을 하는 방법인데, 쉽게 말해 자신이 어떤 아름다운 풍경을 목격하였다면 그것에 대해 느낀 여러 감정들과 풍경을 글로 묘사해보는 것이다. 그야말로 말로써 그리는 그림이라고 할까? 이렇게 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감탄과 경외의 눈길로 바라보았던 모든 풍경들을 어느정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할 수 있다. 나도 어떤 책을 읽거나 여행을 하고 나면 그것에 대해 느낀 것들을 글로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책을 읽거나 보고 난 후에 느낀 감동이나 당혹스러움, 슬픔 같은 감정들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한 마음은 다름아닌 아름다움을 어떻게든 소유하고싶은 욕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흘려보내버리기엔 당시 내 마음을 지배하고 움직였던 것의 정체가 무척이나 궁금하고 그것이 꿈처럼 허망한 것이 아니었다는 확신(이것은 내가 존재하고 있고, 지금 살아가고 있다는 증명과도 같은 말일 것이다)을 나 자신에게 심어주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진다. 조금 늦게 잊혀지거나 조금 일찍 잊혀지거나의 차이일 뿐. 그래도 좀 더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 잡아두고 싶기에 그렇게도 어설픈 글이나마 쓰는 것이리라.

 

 

9. 습관에 대하여

 

 

그래서 우리는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여행의 최종 종착점은 언제나 우리가 출발했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곳은 무한히 반복되는 시간과 그 시간 속에 길들여진 습관이 종양처럼 자라나는 곳이다. 아무리 새로운 장소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게 되면 새로움은 지루함으로 바뀌고 또 다시 습관에 길들여진다. 알랭 드 보통은 마지막으로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여행지에서의 새로움이 아닌 자신이 원래 있었던 곳에서의 새로움을 발견해보라고 이야기한다. 사비에르 드 메스트르의 <나의 침실 여행>이나 <나의 침실 야간 탐험>처럼 자신이 늘 자고, 입고, 먹고, 걷던 장소들을 새롭게 여행해보라고 말이다. 예전에 나도 집 근처의 2층 레스토랑에서 창 밖을 내다본 적이 있었다. 그 거리는 내가 매일 걷던 길이었고, 매일 보던 길이었지만 그 건물의 2층 레스토랑 창가에서 바라본 거리는 내가 매일 걷고 보던 그 길이 아니었다. 어느 곳에 자신의 시야를 갖다 놓느냐에 따라 같은 길이라도 사뭇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음을 그때 깨달았다. 2층에서 바라본 그 길은 늘 걷던 익숙한 감정에서 벗어나 조금은 낯설고 새로운 기분을 내게 안겨주었다. 사비에르 드 메스트르의 경우도 이와 같지 않을까? 아직 그의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익숙한 장소를 새롭게 보는 것은 아마도 그런 것이리라. 하긴 우리가 익숙하다고 느끼는 모든 사물과 장소는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늘 새롭고 변화하는 것일지 모른다. 오늘 아침의 햇살과 이슬을 머금은 풀잎이 어찌 내일의 그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가끔씩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도 타성에 젖은 습관을 타파하는데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이것은 배수아가 말한 '이방인 놀이'와도 비슷한 것 같다. 우리가 다시 본 것에 주목하고 내가 잤던 방과 내가 걷던 거리에서 자신은 방금 낯선 땅에 내린 이방인처럼 행동하는 것.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여행의 기술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호기심을 가지고 관점을 달리하여 사물을 본다거나, 전시회에 가서 도무지 알 수 없는 추상화를 보거나 시골을 여행하면서 강아지풀의 구조에 대해서 잠시 생각한다거나 하는 등의.

 

 

 

10. 여행을 하자!

 

 

끝으로 이 모든 여행의 기술에도 불구하고 여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로 여행을 하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