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나는 너를 모른다

시월의숲 2011. 6. 8. 20:04

좀 더 차가워지고 싶다. 냉철해지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과는 정반대에 있다. 나는 차갑지도, 냉철하지도 못한채 미지근하기만 하다. 너에게 모진 말을 하고 싶다. 비수같이 날카로운 말을 너의 가슴에 수도 없이 꼽고 싶다. 그래서 내가 피흘릴지라도 한바탕 시원하게 울어보고 싶다. 뒤돌아보지 않고, 중언부언하지 않고, 어떤 흔들림도 없이 아주 우아하게 거절하고 싶다. 너의 쌍꺼풀진 눈매와 오똑한 콧날과 붉은 입술을 보고 싶지 않다. 그 앞에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들키고 싶지 않다. 나는 너에게 삶이 재밌냐고 물었고, 너는 뭐 재미있는게 있겠냐고 말했다. 나는 아주 많이 비겁하고, 유치하고 우스웠다. 못마시는 술을 마셨더니 가슴이 아파왔다. 순간 내가 너무 처량하게 느껴졌고 쥐구멍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고백하고 싶지 않다. 그 누구에게든 그 어떤 말이든 발설하지 않을테다. 그래서 내가 피흘릴지라도. 좀 더 차가워지고 싶다. 냉철해지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과는 정반대에 있다. 한바탕 시원하게 울었으면,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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