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싸움의 기술

시월의숲 2011. 8. 19. 22:59

피곤하다. 휴가의 휴유증인지 머리가 무겁고, 눈이 뻑뻑하다. 누우면 그 즉시 깊은 잠에 빠질 것 같다. 사실 휴유증을 느낄만한 휴가도 아니었는데, 단지 일을 하기 싫은 마음 때문일까? 아니면 무더운 날씨 탓인가? 마냥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나마 내일이 토요일이라서 다행이지. 오늘은 기온이 많이 내려가서 일터에서도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 시원한 바람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한다. 가뭄의 단비같은 시원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제 비는 그만 내렸으면 좋겠다.

 

된장국과 계란프라이, 김과 김치를 꺼내 저녁을 먹는다. 요즘은 입맛도 없어서 무얼 먹든지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도 먹어야겠기에 억지로라도 밥을 떠 넣는다. 보이지 않는 전쟁. 혼자 사는 삶은 자신과의 지속적인 싸움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혼자서라도 잘 살기 위해서는 나약하고, 귀찮아하며, 방탕해지려는 자기 자신과 매 순간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 싸움에서 이긴다면 비교적 건전하고 편안한 삶을 살겠지만 만약 진다면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만 남는다. 혼자 사는 삶은 그래서 둘이 사는 삶보다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매 순간 치열하게 살려면 늘 긴장해야하고 경계해야하며, 항상 자신을 돌아봐야한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결심을 무디게 만드는 것은 반복이며 시간이다. 늘 반복되는 삶에 치이게 되면 어느 순간 의욕을 잃고 모든 것이 다 같은 색으로 보이게 된다. 시간도 그렇다. 처음 무언가를 결심했던 그 시간에서 점차 멀어지게 되면 인간은 방심하게 되고, 모든 것이 귀찮아지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매순간 자신을 벼리고, 단단하게 하는 사람들은 진정 위대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위대한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성실한 사람은 되고 싶은데, 그게 또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나는 나를 매번 이기지는 못한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 최대의 적은 바로 외로움이다. 외로움의 습격을 받으면 그 순간 모든 것이 하찮게 느껴지고, 모든 사물이 생기를 잃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적이 있다. 그건 바로 슬픔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슬픔. 그것을 연민이라 불러야 할까. 슬픔은 늘 예기치않게, 허를 찌르면서 나타나 나를 꼼짝 못 하게 만든다. 외로움으로 인한 슬픔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비참하다 여기게 되는 상태보다 더 비참한 경우가 또 있을까? 늘 경계해야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나약함이다.

 

그러고 보면,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의 기술도 여행의 기술도 아닌 '싸움의 기술'이 아닐런지. 자기 자신과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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