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만나기만 하면 나는 과거에 이미 똑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생각을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말과 표현과 몸짓으로 말하던 것을 어디선가 보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때 느끼는 몸의 상태는 때로 아주 오래 지속되는, 지극히 낯선 상태와 아주 흡사한데, 심각한 출혈로 야기되는 혼미한 상태와 같으며, 방금 부지불식간에 심장마비가 스쳐지나간 사람에게 나타날 법한, 사고능력과 언어기관과 관절의 마비로까지 번질 수도 있다. 오늘날까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있는 이 현상은 일종의 종말의 선취, 공허로의 진입, 혹은 일종의 이탈일 수 있는데, 이는 연거푸 동일한 선율을 반복하는 축음기처럼, 기계의 고장이 아니라 기계에 입력된 프로그램의 교정할 수 없는 결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220~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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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우리는 이 지구에서 사는 데 결코 적응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들이고, 삶이란 끝없이 진행되는,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실수라는 생각이 듭니다.(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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