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릿광대

시월의숲 2013. 1. 1. 22:25

무슨 말을 해야만 하는 걸까. 아니, 꼭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침묵이 때론(아니 거의) 모든 것을 말해주기도 하니까(하지만 사람들은 침묵을 견디지 못한다). 새해를 외롭지 않게 보내기 위해 우리가 만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연휴였고, 그래서 다들 시간이 났던 것일뿐. 외롭지 않기 위해 만난건 아니었을지라도 어쩐지 외롭기 때문에 만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한건, 외롭기 때문에 만난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더 외롭게 느껴지는 일이었다. 친구들과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하고, 차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계속 내가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에 섞이지 못하는 기름처럼, 어색하고 맞지 않는 모자를 쓴 어릿광대처럼 말이다. 내가 나를 연기하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묘하게 어긋나는 대화와 감정의 선들. 우리가 만난 것은 각자가 품고 있는 환멸과 자괴감, 외로움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나? 적어도 나는 그렇게만 생각되었다. 더 기막한 일은 나 스스로의 깊은 불안을 확인하는 시간이 때마침 한 해가 지나가는 날이라는 사실이다.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만큼, 보이지는 않지만 굳게 새겨지는 통념들을 확인하는 시간이 바로 이 시기라니. 삶을 이런 식으로 허비해도 되는 것일까? 지난 날, 두려움과 불안감에 애써 모른척 해야했던, 그래서 그것을 찾고자 했을 때는 이미 늦었던 그 시간들처럼. 지금도 나는 그렇게 내 삶을 스스로 유폐시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너무나 두려워서 몸이 다 떨릴 지경이다. 2013년에는 이 두려움과 불안을 잠식시킬 수 있을까?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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