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웃는 듯, 우는 듯

시월의숲 2012. 12. 20. 23:04

사실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정책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논할 처지가 못된다. 아는게 있어야 무슨 이야기라도 할 것이 아닌가? 다른 이들과 대화를 할 때면 인터넷에서 주워 읽은 여러가지 이슈나 정치적 상황들을 대충 넘겨짚어가며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조심스레 의견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참 정치라는 것에 흥미가 없구나, 하고 새삼 느낄 뿐이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이란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저마다 올바르게 생각하는 것들을 실현시키려는 행위에 대해서 어찌 그렇게 관심이 없는 것인지 때론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와는 별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그다지 피부에 와닿지 않기 때문에?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나는 이것이 조금 창피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가끔 한다. 정치란 직접적으로는 아닐지라도 간접적으로 내 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건 어쩌면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일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어쨌든 사람들은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저마다 전문가인 것처럼, 확신에 찬 어조로(어떻게 그런 광신도적인 확신에 이를 수 있지?) 침을 튀기며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때면 우선 얼굴 표정이 바뀌고, 상대방의 의견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듣고 있어도 절대 인정하거나 받아들이지 않고), 심하게는 욕설과 비방까지 서슴치 않는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그들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늘 생각에 잠긴다. 세월이 바뀌고, 새로운 생활양식들이 개발되고, 과학기술이 발전하며, 어떤 것들은 재평가를 받고, 또 어떤 것들은 폐기되기도 하며, 소수의 의견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등의 변화가 이루어져서 그래도 예전보다는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건 너무나도 순진한 생각이었던 것이다. 정치에 관심은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 모두 함께 잘 사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정치에 관한 내 최소한의 관심이었는데. 오히려 세상은 내 관심 따위엔 아무런 흥미가 없고, 원래 다 그런게 돌아가는게 아니겠냐며 비웃고 있는 것만 같다.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 눈이 있어도 보이지 않고, 귀가 있어도 들리지 않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기분(그들은 나를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이 든다. 이건 어쩌면 좀, 아니 많이 무서운 일이 아닐까? 내가 오늘 힘이 없고, 울적한 기분마저 드는 것은 어제 투표사무원으로 선출되어 새벽부터 하루 종일 일했기 때문만은 분명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