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이거 좀 드시겠어요?

시월의숲 2013. 4. 12. 23:07

내가 한 음식을 누군가에게 대접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임을 깨닫는다. 감자 샐러드를 만들까 싶어 감자를 사고, 샌드위치를 만들까 싶어 식빵을 샀다. 냉장고에 있는 달걀과 맛살, 햄, 양파 반 개, 마요네즈를 꺼내 샐러드 만들 준비를 했다. 감자 삶는 시간이 좀 오래 걸렸을 뿐, 다른 일들은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삶은 감자를 으깨고, 삶은 달걀을 다져서 준비된 다른 재료들과 마요네즈를 넣어 한데 섞는다. 샐러드를 만들고 난 후 식빵을 토스터에 넣어 살짝 구운 뒤 식빵의 한쪽 면에는 마요네즈를 다른 한쪽 면에는 딸기잼을 바른다. 샐러드를 채워넣고 식빵을 덮은 다음 칼로 반을 자른다. 자른 샌드위치를 투명 랩에 싼다. 음식을 만들 때는 오로지 음식을 만드는데 정신을 집중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만든 샌드위치를 맛 볼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을 상상했던 것 같다. 누군가 어떻게 이런 걸 다 만들 줄 아느냐고 물어볼 것이고, 나는 수줍게 웃으며, 이건 별로 어렵지 않다고, 그저 평범한 샌드위치일 뿐이라고 대답을 할 것이다. 하지만 샌드위치를 다 만들고 난 뒤, 그것을 들고 출근을 해서 직장 동료에게 먹어보라고 권할 생각을 하자 갑자기 벽 같은 것이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난감함으로 무장된 벽이랄까. 내가 만든 음식을 맛보여 준다는 건 상당히 용기있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실제로 내가 음식 만드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는, 너무 많이 만들어서 가져온 것일 뿐, 부담 갖지 말고 드세요, 라는 대답만을 거듭 떠올렸고 또 준비했었다. 하지만 그건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음식의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객관적으로 내가 만든 음식이 맛이 있는지 없는지를 내가 판단할 수도 없거니와) 그건 일종의 폭력이나 강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예전에 본 박철수 감독의 <301 302>란 영화의 주인공처럼. 영화 속 주인공은 끊임없이 음식을 만들어 이웃집 여자에게 가져다주지만 거식증에 걸린 여자는 음식을 받자마자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처럼 폭력적이지는 않겠지만, 상대방은 내게 전혀 바라지도 않았던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에 내재된 폭력성을 미약하나마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선(善)으로 포장된 폭력도 있는 것이다. 그런 속성을 내가 느꼈기 때문인지, 단지 내가 만든 음식이 볼품없고 창피하게 느껴졌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음식을 다 만들고 난 뒤에야 깨달았다. 이 샌드위치를 직장에 가져가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냉장고 가득찬 샌드위치를 보며 생각한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만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