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입속의 검은 잎

시월의숲 2013. 7. 1.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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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이다. 저번 주부터 장마가 시작된다고 들은 것 같은데, 또 내일부터 장마가 시작이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밤에는 기온이 내려가 그나마 견딜만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사라져버렸다. 벌써부터 열대야인가? 더위와의 싸움이 시작되고 있다. 이 집은 더워서 작년에도 무척 고생했는데, 올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직장에서는 에어컨이 고장 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여름철만 되면 덥다고 아우성이고, 겨울철이 되면 춥다고 아우성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투덜거림 역시 어쩔 수 없다. 덥다고 투덜대기라도 하면 좀 덜 더워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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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우니까 밥맛이 없어진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왜 이렇게 밥맛이 없지? 하면서 천천히, 조금 먹었다. 배는 고픈데 밥맛이 없는 경우는 또 무엇인지. 저녁도 차려 먹기 귀찮아서 대충 때웠다. 저녁을 먹고 나서 미장원에 갔다. 집 근처에 있어 몇 번 간 미장원인데, 가격이 올랐다. 웬만하면 머리는 그냥 미용사가 하는 대로 놔두는 편인데, 다 깎고 나서 안경을 쓰고 거울을 보니 앞머리가 너무 짧게 깎여 있어서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이미 깎은 머리를 이어 붙일 수도 없고해서 그냥 씁쓸하게 웃으며 미장원을 나왔다. 다음엔 반드시 거리가 멀더라도 다른 미용실에 갈 것이다. 머리카락이 또 자란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그나저나 지금 내 헤어스타일에 적응하려면 아무래도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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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일상은 흘러간다. 얼핏 큰 변화 없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미묘한 틈이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 틈 속으로 불안과 두려움, 슬픔 같은 감정들이 몰려든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 틈이 내가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서 나까지 삼키려 들지도 모른다.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결단이 필요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인가? 그러한 결단은 반드시 내려야만 하는 것일까? 생각하면 할수록 알 수 없고, 두려우며, 결국엔 슬퍼지는 일,을 나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때로 온 몸이 마비될 정도로 불안하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두렵다. 내 '입속의 검은 잎' 때문에. 농담과 가면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나는 가능하다면 영원히 그렇게 버티고 싶다. 아직은 아무도 잃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나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