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우연의 음악

시월의숲 2013. 7. 23. 23:06

 

 

 

생각한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약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언젠가 통영이란 곳을 가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바람은 이루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통영에 가기 위해서 노력한 것이 거의 없다. 그저 통영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을 품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어쩐지 내가 통영에 가게 된 일이 내 의지의 발현인 것처럼 생각된다. 어떻게든 이유를 붙이고 싶어하고, 무엇이든 의미를 찾고 싶어하는 인간의 마음 때문일까? 뭐, 순전히 우연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리고 사실 그건 우연에 지나지 않으니까. 중요한 건 내가 통영에 갔었다는 사실이니까.

 

바다를 끼고 길게 이어지던 통영 시내를 걷고, 청마 문학관에서 '깃발'을 읽고, 배 위에서 끈적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수평선을 바라보았고, 사량도를 둘러보았다. 내가 통영을 제대로 본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내가 본 것은 통영이란 도시에 속한 이름없는 무인도일지도 모른다. 사량도행 배에서 본 작은 섬들과 바다를 가르던 하얀 포말이 눈 앞에 떠오른다. 마치 우연의 음악처럼 파란 바다 위에 번지던 하얀 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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