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

시월의숲 2014. 3. 8. 17:43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오랜만에 가족 혹은 친구로부터 전화가 온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걸어온 상대방은 짐짓 화난 음성으로 '너도 참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전화를 하지 않을수가 있니?' 라고 타박을 한다. 나는 웃으며, '내가 그렇지 뭐. 내 신조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거든. 근데 너도 그렇게 전화를 자주 하는 건 아니잖아?' 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내게 전화를 건 상대방이나 나나 전화 안하기로 유명하다는 걸 서로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오후까지 잠을 자고 일어나 설렁설렁 늦은 점심을 차려먹고, 텔레비전을 보는둥마는둥 하다가, 인터넷의 시시껄렁한 기사를 보면서 음악을 듣고 있는데,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는 대뜸 어디냐고 물었고, 나는 아직 사택이라고 대답했다. 지난 몇 주 동안 주말에 일이 있어서 집에 내려가지 못했기에 오늘은 반드시 가리라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버지는 일을 마치고 운동을 나온 참이었는데, 내가 오는 시간에 맞춰서 터미널에 가 있을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평소 내가 도착하던 시간을 짐작하여 거기에 맞출 요량이었는데, 내가 그보다 더 늦은 시간에 출발하려한다고 말하니까, 그럼 그냥 오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순간 머쓱해져서, 어제 친목회다 뭐다해서 술을 마셨기 때문에 오늘 늦잠을 잤다는 둥 핑계를 댔는데, 아버지는 아무렴 어떻냐고 하시며 그냥 오늘은 집에 오지 말고 쉬라고 하셨다. 괜찮다고 하셨지만 못내 서운하셨을 것이다. 늦으면 어떻냐고, 그래도 가겠다고 막 우겼지만, 아버지는 끝내 오지 말라고 나를 타일렀다. 나는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서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나는 왜 늘 사람들을 놓치는 것일까? 왜 늘 마음의 끝자락을 잡지 못하는 것일까? 이러다 나중에 큰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은 정말 이기적인 것이 아닌가. 그 말은 내가 너에게 관심이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하면서, 평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어쩌면 나는 그 말 속에 숨어서 그와 멀어지기를, 제발 그 누구든 나와 관계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결과, 내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고, 그리하여 지독한 고독에 몸부림을 치게 되더라도 나는 그것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