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성석제 외,『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 봄날의책, 2013.

시월의숲 2014. 3. 17. 00:18

 


제목만으로 이끌리는 책이 있다. 물론, 오로지 제목 때문에 그 책을 선택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제목은 첫인상이다. 일단 제목이 내 눈길을 끌면, 어떤 내용의 책인지 대충 훑어본 다음 선택을 한다. 이번에 읽은 책도 그러했다. 인터넷 서점에서 이런 저런 책을 클릭해본다. 그러다 우연히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한다.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 라니. 책을 클릭하여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파악한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작가가 아니라 여러 작가들의 글을 모아놓은 산문선집이다. 나는 계속해서 익숙한 이름이 있나 살펴본다. 공선옥, 성석제, 김연수, 백가흠, 김중혁 등 소설가와 김선우, 김소연, 이정록, 함민복 등 시인들의 이름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그 외엔 내가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 많다. 그들은 농민이거나 언론인, 우체부, 사진가, 교사, 노동운동가 등의 다양한 직함을 가졌다.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책 속에 오롯이 담겨있다. 그 이야기들 중 어떤 것들은 가족에게 바쳐지고, 어떤 것들은 잊혀진 것에, 또 어떤 것들은 현장 고발에 바쳐지기도 한다.

 

추억을 그리고 있는 산문을 읽을 때면, 아련한 그리움에 마음이 따뜻해져서 내 지나간 시간들을 돌이켜보게 되고, 삶의 부조리한 현장을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나 자신의 무지와 안일함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특히나 노동운동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을 때 그랬다. 그들의 산문에는 용암같이 뜨거운 열정이 흘러넘친다. 일상적인 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어떤 절실함과 분노, 좌절 등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리라. 책을 읽으면서 나는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느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모두 인간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 책을 다 읽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각각의 글은 짧았지, 하나의 산문을 다 읽고나서 다음 글로 넘어가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 책은 한 권의 소설처럼 단숨에 읽어나가면 안된다. 책 속에 실린 하나하나의 산문마다 한 권의 소설과도 같은 묵직함이 있기 때문이다(물론 소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삶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지만).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커피를 내리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책 속에 담긴 삶의 향기를 음미해야 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기를.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될 테니까. 다 읽고 나서는 제목을 다시 한 번 눈으로 쓸어보게 될 테니까. 그리고 이렇게 말하겠지.

 

'나는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순간부터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