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스콧 니어링, 『스콧 니어링 자서전』, 실천문학사, 2000.

시월의숲 2014. 5. 18. 20:56

 

 


햇살이 환히 비추는 날씨였지만 걷기에는 좀 더웠다. 하지만 저녁엔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감기 때문에 목소리가 변한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일교차가 심하여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난감했다. 아직 반소매를 입기에는 망설여져서, 긴 소매 옷을 입고 낮엔 소매를 걷고 다녔다. 주말 동안 나는 업무와 관련된 정보화 시험을 의무적으로 쳤고, 나머지 시간에는 친구를 만나고, 동생 내외와 조카들, 아버지를 만났다. 우리는 마트에도 가고, 식당에도 갔다. 때가 되면 고픈 배를 채워야 했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야 했으므로. 마트는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이 되어 버렸다.

 

대형 마트의 주차장에는 늘 차들이 빼곡했다. 마트에 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는 어쩌다 친구 혹은 가족들과 가야 할 일이 생기면 입구에 들어가기도 전에 피곤이 몰려왔다. 마트의 주차장에 내리는 순간부터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고,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길이 나를 떠미는 것을 느꼈다. 마트에 진열된 수많은 물품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본주의 사회의 일상적인 단면이 마트에는 있었다. 나 또한 그 속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며 사지 않아도 좋을 것들을 카트에 하나둘씩 담았다.

 

거대한 마트에 우글거리는 수많은 사람들(나를 포함하여)이 때론 불쌍하다 여겨지기도 했다. 마트가 마치 파리지옥처럼 사람들의 지갑을 탕진하게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느낌은 예전부터 있었는데, '스콧 니어링 자서전'을 읽고 나서는 더 강하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마트의 거대함 자체가 이미 너무나도 노골적이지 않은가? 속된 말로 가난한 사람들의 씨를 말리려는 심산으로까지 보이는 것이다. 예전에 들었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났다. 이전까지의 대기업들은 '문어발식 확장'을 했다면 이제는 '지네발식 확장'을 하고 있다고. 예전에는 소규모 가게에서나 팔던 피자나 순대를 대형마트에서 파는 것을 빗대어 한 말이었다. 하지만 내 이런 생각도 잠시, 나는 화려하게 진열된 물품들에 정신을 빼앗기고, 그들이 원하는 심리전술에 매번 휘말리고 만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잠시 지나가는 생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재난'마저도 자본주의의 논리에 놀아나는 세상)에서 그런 생각 자체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의 편리를 도모하고, 안락하게 해주며, 급기야는 우리가 풍요롭다고 믿게 하니까. 나조차 그러한 편리를 누리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것도 아닌 내가 거대 자본주의 사회에 맞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스콧 니어링처럼 모든 자본주의적 고리를 끊고 시골로 들어가 자급농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그게 올바른 길일까?

 

모두가 스콧 니어링처럼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열렬히 사회운동을 할 지식과 능력, 열정, 자본주의와 '소수 독재체제'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자급농이 될 용기와 결단이 모든 사람에게 있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작은 생각과 행동이 모여 무언가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내가 스콧 니어링의 자서전을 읽고 알 수 없는 통쾌함과 순수한 기쁨을 느꼈던 것처럼 우리는 누군가의 생각에 감응할 수 있고, 그로인해 자기 생각에 변화를 줄 수 있다. 그것은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라 내 안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것이기에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실질적인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내가 자서전을 읽고 했던 생각은 이런 것이다. 무차별적인 자본주의의 노골적인 공격에 맞서 나를 지켜낼 있는 힘을 기를 것. 매몰되지 않고, 편견에 물들지 않고, 세뇌당하지 않고 늘 깨어있는 정신 상태를 유지할 것. 하나의 현상에 대해서 쉽게 단정을 내리지 않고 한 번쯤은 다르게 생각해 볼 것.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 자들이 아니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비로소 혁명적일 수 있는 자들의 편에서 생각할 것. 달콤한 거짓에 현혹되지 않고 그 속에 있는 진실이 무엇일까 항상 생각할 것. 밝혀지거나 혹은 알게 된 진실이 추하고 불편한 것일지라도 그것을 외면하지 말고 똑바로 바라볼 것. 그래,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