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1999.

시월의숲 2014. 2. 23. 18:01

 


우리가 그렇게 바라마지않는 사랑, 한 사람만을 위한 사랑은 정영 존재하는 것이던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소설은 한 여인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한 청년의 절절한 고백이자 환희와 좌절의 기록인데도, 나는 어쩐지 죽음으로 귀결된 주인공의 결말에서 영원한 사랑 혹은 한 사람만을 위한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 이건 어찌된 영문일까? 아마도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의 내용만이 아닌, 작가 괴테의 일생을 설명한 부분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의 말미에 실려있는 작품해설에 보면, 괴테는 일생동안 몇 번의 도주(다름아닌 자신이 사랑한 여인으로부터의!)를 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괴테는 상대방을 그리는 마음으로 작품을 남겼는데, 그것이 시집이나 소설 등으로 형상화 되었다는 것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그러한 자신의 경험과 친구의 이야기가 결합된 소설이었다.

 

괴테는 친구 예루살렘이 남편이 있는 부인에게 연정을 품었다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체험과 연결하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완성하였다. 나는 소설을 읽고나서야 이러한 사실을 알았다. 내가 곡해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어쩐지 괴테는 자신의 문학적인 성취를 위하여 여인들을 만나고 도주한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절절한 사랑의 비가들이 여인들과 헤어지고 나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나올수 있단 말인가. 그가 여인들을 만날 때마다 느꼈던 사랑의 감정이 모두 진짜이고, 절실하였다고 해도, 아니 진실로 그러하다면 더욱 그의 작품들을 대할 때면, 눈을 멀게하고, 숨을 멎게 하는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씁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눈이 멀어버릴 정도의 사랑, 손을 대기에도 아까울 정도로 고결하고도 순결한 사랑이, 한 사람에게 그리도 많이 찾아온다는 말인가? 그 순간이 진심이었다면, 사랑의 진심이란 도대체 몇 번이고 찾아올 수 있는 것이었던가? 그 모든 사랑이 다 위대한 것인가? 그 열렬함은 아무 여인에게서나 나올 수 있는 것이었던가?

 

나는 지금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위대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에, 괜히 투덜대는 것이다. 만약 문학작품이 위대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별거 아닌 사랑을 별거 있는 것처럼 만들어 보이기 때문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과연 위대하다 할 수 있다. 한 눈에 반해버리는 사랑, 거기서 오는 격정, 환희, 절망, 좌절, 슬픔의 파노라마가 저 짧은 소설 안에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기에 더욱 절실하고, 애틋하고, 아픈 사랑. 그러한 감정이 크면 클수록 비극적인 결말은 자명해 보인다. 그것은 통제불능의 괴물과도 같은 감정이기 때문이다. 아, 베르테르, 그는 너무 젊었고, 그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격정에 휩싸여 있었다. 그가 죽지 않았다면 그는 사랑에 대해 좀 더 여유롭고 냉소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젊었다. 젊음이란 아마도 그런 것이리라. 사랑이 일단 제 몸과 마음을 점령하면, 사랑 이외의 것은 보이지 않는다. 베르테르는 순수했고, 열정적이었고, 미성숙했지만, 용감했다. 괴테가 그려보이는 것은 거기까지다. 그 이상의 어떤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의 감정을 이처럼 격정에 찬 어조로 생동감 있게 그려보일 수 있었던 것은, 괴테 자신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리라.

 

앞서 사랑에 대해 냉소적인 말을 하긴 했지만, 달리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영원한 사랑 혹은 첫 눈에 반한 사랑, 한 사람만을 위한 사랑이란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만약 거룩하고 위대한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그건 한 사람의 일생에서 한 번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순간순간에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순간의 진실이 영원한 진실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베르테르의 사랑이 너무 비현실적이라거나 고전적이라고 비난할 필요도, 괴테가 일생동안 몇 번씩 여성들에게서 도주하면서 남긴 문학작품을 보면서 그리 냉소적이 될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사랑이란 어차피 그런 거니까. 어쨌든 그 순간에는 모든 것을 다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을 감정과 사랑하는 이의 품에서 죽어도 좋다는 생각을 했을테니까. 그것이 다름아닌 호르몬의 작용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지라도. 다만 우리는 베르테르의 죽음에 조의를 표하면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