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4시의희망

박효신 - 야생화

시월의숲 2014. 4. 11. 22:53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꼽으라면, 여자는 이소라, 남자는 박효신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곤 한다. 엄밀히 말해 좋아하는 보컬리스트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실력있는 뮤지션은 많지만,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감성을 건드리는 가수는 흔치 않은데, 이소라와 박효신이 그 대표적인 예인 것 같다. 자신이 싱어송라이터가 아니라면 가수는 다른 누군가에게 곡을 받아서 노래를 부르고 앨범을 만들 수밖에 없는데, 이소라는 그 부분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자신만의 멋지고 인상적인 앨범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박효신은 아직 그런 역량은 부족한 것 같아 개인적으로 늘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래도 1집과 2집은 꽤 좋은 앨범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3집을 지나 4집 부터는 뭔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모든 사람이 다 한 벌쯤 가지고 있는 옷을 그대로 입고 나온 것처럼 좀 진부했다. 박효신이라는 묵직한 보컬리스트가 부르기엔 좀 가벼워보이는 곡이었달까? 어쩌면 그건 소속사를 옮긴 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3집 이후의 노래들이 이전의 곡들에 비해서 보다 평범해졌고, 그래서 그의 뛰어난 음색과 노래실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소리가 가진 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타고난 목소리 뿐만 아니라 선곡 또한 무척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그에 대한 애정이 아직 식지 않았음에도, 그때부터 그의 노래에 흥미가 떨어졌고 일부러 찾아서 듣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그의 진정한 팬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감성을 건드리는, 흔치않은 가수라고 말했지만, 그가 부르는 노래가 좋지 않아서 듣지 않게 되었다는 말을 하고 있으니까. 어느 시기부터 그가 발표하는 노래들이 대중의 취향에 노골적으로 영합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슬쩍 감추거나 혹은 우회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그래서 어떤 작품성이나 예술성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직설적이고 기계적이며 신파적으로 말이다. 이건 대중가수에게 터무니없는 주문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 어쩌면 단순히 내 취향이 아나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 박효신의 대표곡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혹 '눈의 꽃'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박효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좀 슬플 것 같다.

 

대학교 때, 시간이 남아 오락실에 가거나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게 되면 늘 부르던 '해줄 수 없는 일'이나 '바보', '동경' 같은 노래는 더이상 나올 수 없는 것인지. 그냥 이노래 저노래 다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음악성(?)을 가진 보컬리스트라는 이름으로 기억될 수는 없는 것인지.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가진, 그런 가수가 될 수는 없는 것인지. 그러기 위해서는 어쩌면  대중성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중성을 포기하기 전에 박효신이라는 보컬리스트가 확실히 기억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될 수 있는 멋진 노래, 자신의 목소리가 가진 매력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노래를 만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나온 '야생화'는 그런 내 갈증을 조금이나마 채워주는 것 같다. 노래가 나온 후 음악프로나 음원차트에서 1위를 하는 것을 보면, 그게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나 보다.

 

기교에 함몰되지 않고, 감정에 휘둘리지도 않고 자신의 목소리톤을 잘 조절하면서 부른 노래인 것 같다. 멜로디도 아름답고. 좀 전형적이긴 하지만, 뭐 이 정도는 괜찮다. 앞으로도 이런 노래들을 많이 불러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힘을 빼고 편하게 부르는 노래 또한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단발성 기획으로 내는 한 곡의 노래가 아니라, 그가 가진 목소리로 탐색할 수 있는 세계가 담긴 한 장의 '앨범'을 듣고 싶다. 이소라처럼. 내가 너무 쓸데없이 진지한 건지도 모른다. 이소라는 이소라고 박효신은 박효신일 뿐인데. 그냥 지금 이 순간 그의 노래를 듣고 즐기면 그만인데. 그의 노래가 인기가 있든 없든 내가 듣고 좋으면 그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무언가 바라는 마음이 드는 건 왜인지. 아, 이런 걸 팬심(心)이라고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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