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당신의 유일한 낙은 무엇인가요?

시월의숲 2014. 9. 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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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아직 낮의 태양은 뜨겁지만, 한여름의 태앙만큼은 아니다. 잘 때 창문을 닫아야 하고, 이불을 목까지 덮어야 한다. 반바지와 반팔의 잠옷도 이젠 어울리지 않는다. 일교차가 커지면서 재채기가 심해졌다. 아침과 저녁에 코가 간질거리면서 재채기가 연속적으로 나온다. 재채기를 하고나면 콧물과 함께 눈물까지 나온다.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몸소 느끼고 있다. 가을이 오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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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휴일에 늦잠을 자려해도 아침에 한 번쯤은 꼭 깬다. 평소 일어나야 하는 시간에 적응이 되어서일까? 예전에는 자각하지 못했던 감각이 느껴진다. 잠에 대한 강박 때문일까. 종종 누군가 주말에 혼자서 뭐 하느냐고 물어오곤 하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늦잠자는 것이 내 유일한 낙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내 유일한 낙은 잠을 자는 것이다. 하지만 잠의 치명적인 단점은 자면 잘수록 피곤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잠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고, 주말에 늦잠을 자지 않으면 그 다음 한 주가 몹시도 피곤하다. 내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아마도 잠인 것 같다. 잠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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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나는 집에도 내려가지 않고, 사택의 내 방 컴퓨터 앞에 앉아 이런 글이나 쓰고 있다. 아마 내일쯤 내려가지 싶은데, 아무런 감흥도 느낄수 없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큰집에 내려가지 않는다. 얼마전 벌초 때문에 만난 아버지의 형제들에게서 나는 알 수 없는 답답함과 어색함, 부담스러움을 느꼈다. 또다시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이건 비겁한 행동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그들과 만나고 싶지 않다. 그들 또한 내 존재를 영원히 잊어주었으면 좋겠다. 아버지의 형제들 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버지라는 사실, 그것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만날 수밖에 없으리라.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않았을. 아버지란 무엇인가? 아버지란 내게 어떤 존재인가? 참으로 난감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명절에는 반드시 가족들과 만나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듯한 문화 속에서 나는 때때로 질식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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