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마음의 문제인가, 익숙함의 문제인가

시월의숲 2014. 9. 23. 22:27

차가 생기면 어디든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마음대로, 내가 가고 싶은 곳에 언제든지 갈 수 있다고. 시간을 지배할 수 있고, 그러므로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이젠 알겠다. 그것은 차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차의 유무가 아니라 마음의 유무라는 걸. 그러니까 먼저 마음가짐의 문제라는 걸, 이제는 알겠다. 나는 지금 차가 있지만, 어디로든 갈 수 없고, 어느 시간이고 움직일 수 없다. 오히려 차가 있기 전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스트레스가 나를 짓누른다. 차가 없다면 사람들은 저 사람은 원래 차가 없으니까, 라고 말하며 당연하게도 차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 하지만 차가 있으면 사람들은 너도 차가 있으니까, 라고 말하며 당연하게도 차에 대해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묻는다. 차를 타고 다니기 전에 받았던 스트레스에 비하면 차를 타고 다니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훨씬 크다. 이것은 내가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다른 사람들도 당연한듯 차를 몰고 다니므로, 그들의 표정, 그들의 말투에서 나는 차에 대한 어떤 불만이나 스트레스의 기미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내 이런 심정을 말하면 그들 또한 처음에는 다 그랬다고, 지금도 처음 가는 장소에 갈 때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한다. 나는 어쩐지 그 말이 믿기지 않는다. 그들은 너무나도 태연하고, 능수능란하게 차를 몰지 않는가! 그들은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뎌내었던 것일까? 나는 왜 유독 차를 몰고 어디로 가야한다는 사실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일까? 아직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가? 만약 그것이 익숙함의 문제라면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불현듯 몇 년 전에 만났던 한 사람이 생각난다. 그 사람과 점심을 먹기로 한 식당은 걸어가기에는 좀 멀고, 차를 타고 가기에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은 당연히 차를 몰고 가려고 할 것이나, 그 사람은 자신의 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함께 걸어가자고 말했다. 나는 흔쾌히 그와 함께 걸어갔으나, 걸어가면서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생각했다. 그때의 느낌이 되살아나면서, 그 사람의 심정도 지금의 나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지는 않겠지만, 어느정도는. 마음가짐의 문제라는 것이, 익숙함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익숙해지면 절로 마음이 생기게 될까? 그렇다면 익숙함이란 언제 생기는 것인가? 아직까지 나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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