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이제 가을이에요, 라고 말할지도

시월의숲 2014. 9. 27. 01:26

기차의 창밖으로 보이는 들판은 온통 노란색이었다. 진한 노랑은 아니었지만, 살짝 연둣빛이 가시지 않은 노랑이라고 해야할까. 아무튼 노란빛깔의 들판을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가을, 이라는 말이 입가에 맴돌았다. 누구든 옆에 있었다면 이제 가을이에요, 라고 말할 것만 같았다. 아직 단풍이 든 것도 아닌데, 벼는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추석이 아주 오래전에 지나가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돌아보면 아직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과거가 무서울 정도로 빨리 잊혀진다. 그리 기억할만한 추석이 아니어서인지도 모른다. 혹은 너무 일찍 추석을 맞이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이제서야 벼들이 익어가고 있는데 말이다. 이런 날, 기차를 타고 출장을 다녀왔다. 근무지를 옮긴 후, 장거리 출장이 잦아졌다. 출장을 자주 다니는 것이 내키지는 않지만, 덕분에 기차를 탈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괜찮은 일인 것 같다. 기차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길 수 있고, 책도 읽을 수 있다. 누군가의 블로그에서였던가? 기차가 최고의(?) 도서관이라는 문장을 본 적이 있다. 희안하게도 기차 안에서의 독서가 집중이 더 잘 되기도 한다. 기차에서 스마트폰을 보거나 음악을 듣지 않는 나는, 긴 시간을 책이 아니고서는 견디기가 힘들기 때문이다(버스에서의 독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집중이 더 잘되는 만큼 피로 또한 빨리 와서, 독서를 그리 길게 하지는 못한다. 책을 읽다가 피곤해지면 잠시 눈을 붙이기도 하고, 창밖을 내다보며 풍경을 감상하기도 한다. 기차가 터널에 들어갈 때는 잠시 책에서 눈을 떼었다가, 밝은 빛으로 나오면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린다. 그런 식으로 목적지까지 간다. 이번 기차 여행(?)에 고른 책은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몰락하는 자>였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이후 두 번째로 읽는 베른하르트의 책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처럼 이 책도 문단의 구분이 없이, 처음과 끝까지 한 문단으로 된, 마치 레일 위를 끊임없이 달리는 기차의 규칙적인 리듬을 생각나게 하는 소설이었다. 내 이런 생각은 아마 기차를 타지 않았다면, 기차 안에서 이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결코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어딘가 이상하긴 하지만, 기차를 닮은 소설이라고 해야할까? 혹은 끝이 보이지 않는 레일을 닮은 소설? 기차 혹은 기차여행이라는 단어가 지닌 고유의 느낌처럼, 이 소설 또한 나름의 독특한 매력으로 가득하다. 애석하게도 돌아올 때는 기차를 타지 못했다. 출장지에서 만난 지인의 차를 타고 왔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다 읽지 못한 소설 때문에 기차를 타고 오기를 바랐으나, 차마 그의 친절과 배려를 거절하지 못했다. 그의 차를 타고 오는 동안 나는 어색한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필요 이상으로 말을 많이 했다. 나는 그의 배려가 진심으로 고마웠으나, 한편으로는 기차를 타고 오는 것보다 더 큰 피로를 느꼈다. 하지만 다시금 노란 들판이 시야에 나타났으므로, 나는 조그만 목소리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가을이에요. 그가 무슨 말을 했던가? 나는 대답이 필요치 않는 혼자만의 질문을 던진 후, 계속 들판을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아닌 나  (0) 2014.10.17
고요한 일상  (0) 2014.10.12
마음의 문제인가, 익숙함의 문제인가  (0) 2014.09.23
당신의 유일한 낙은 무엇인가요?  (0) 2014.09.06
우리는 만난 적이 있을까  (0) 2014.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