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배수아, 『잠자는 남자와 일주일을』, 가쎄, 2014.

시월의숲 2014. 12. 13. 22:27

 


'잠자는 남자'는 글도 쓰고 영화도 찍는, 저자의 독일인 친구이다. 배수아는 5, 6년 전부터 간헐적으로 그와 촬영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이 책은 그와 함께 LA의 데쓰 밸리로 떠난 여행의 기록이다. 작가는 그를 '잠자는 남자'라 부르는데, 그것은 그가 촬영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순수한 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중국, 몽골, 독일 등을 여행하면서, 글을 쓰고 촬영을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여행기인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여행은 관광이나, 휴식 혹은 즐김 등의 목적을 가진 것인데 반해, 배수아의 여행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책의 첫머리에 실려있는 '여행에 대하여'를 읽어보면, 그가 생각하는 여행이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있고, 또한 그것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여행(특히 해외여행이라는 단어의 어감에서 풍기는 이미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여행지에서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누구도 만나지 않고, 여행에 대해 항상 아무런 계획이 없고, 여행을 특별히 좋아하거나 꿈꾸어 본 적도 없으며, 심지어 순수한 마음의 동기에 의해 자발적으로 훌쩍 어행을 떠나본 적도 거의 없다. 그의 여행은 자신의 여행 가방과 마찬가지로 불완전하고 혼돈스럽다. 여행지에서 그는 집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혼자이며,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고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으며, 그는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그들은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의 여행은 목적도 아니고 결과도 아니다. 일도 아니고 휴가도 아니다. 그의 여행은 그의 삶에 무수히 편재된, 수동적이고 우연한 사건일 뿐이다. 그의 여행은 작가들이 오직 글을 쓰기 위해서 장소를 옮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단지 그가 있는 장소의 이동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의 여행은, 여전히 머뭇거리고, 길을 잃고, 말을 더듬으며, 내성적이며, 불안하고 그리고 불특정하다. 

 

그가 책에 기록한 내용을 길게 인용하긴 했지만, 그에게 있어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의 여행에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낀다. 일상적인 여행에서 벗어난, 여행의 여행. 일상의 탈출이 아니라 연장(장소의 이동일 뿐이라는 면에서)으로서의 여행. '경계를 넘는' 여행이 아니라, '경계를 의식하지 않는', 어떤 면에서는 '경계가 없는' 여행. 어느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의 이동일 뿐인 여행. 그러므로 책의 제목에 명시된 '일주일'은 이 책의 형식적인(굳이 일주일일 필요도 없는) 틀,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책의 내용 또한 단순히 일주일간 여행을 한 기록이 아니라, 몇 년 간의 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그는 가장 최근의 LA 데스 밸리에서의 여행을 기준으로 몇 년 동안 상하이, 몽골, 독일 등을 다니면서 느꼈던 것들을 회상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인상적인 삽화들이 많았지만, 미국을 여행하면서 묵었던 호텔에 대한 묘사가 기억에 남는다. 그들이 처음 묵었던 곳은 '할리우드 드림 호텔'이었고, 두 번째로 묵은 곳이 '아마고사 오페라 하우스 호텔'이었다. 둘 다 오래되고, 낡고, 불편했으며, 음식도 형편없는 곳이었지만, 그에게만은 이상하게 마음을 빼앗기는 부분이 있었고, 그는 그것을 마치 꿈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 꿈.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그가 묘사하는 모든 것들이 마치 꿈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그는 지금 꿈을 꾸면서, 그 꿈을 묘사하고 있으며, 심지어 꿈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꿈으로의 여행. 여행이 곧 꿈이 되는 초현실적인 상황. 추상적인 아름다움. 몽환의 여행. 잠자는 남자와 그는 바로 '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말한다. '나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와 함께 촬영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 이해하게 된 듯하다. 우리의 작업은 공동의 꿈 꾸기나 마찬가지였다.…그것이 우리의 작업이고 꿈이었다. 그것이 우리의 잠이었다.'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현실이 꿈으로 변화하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그 꿈이란 미래의 예측이나 소망 따위의 세속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잠자는 남자가 촬영하고자 했으나 번번히 실패하고, 성공하지 못할 것임을 예감하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그런 잠처럼, 완벽하고 순수한 어떤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도 그런 종류의 잠, 혹은 꿈임을 깨닫는다. 그는 지금껏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꿈을 바탕으로 글을 써왔고, 앞으로 쓰려고 하는 글 또한 꿈에 바탕을 두고 있을 것임을. 어쩌면 이 책은 작가의 은밀한 사랑 고백일지도 모른다. '잠자는 남자'에 대한, '잠'에 대한, '꿈'에 대한, '문학'에 대한.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끝은 어떠할 것인가? 이렇듯 독특하고 매력적이지만, 어딘가 쓸쓸하고 잔잔한 파도 아래 잠긴 슬픔과도 같은 이 잠과 꿈의 결말은? 손에 잡히는 잠과 꿈이란 가능한 것인가? 책의 제일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썼다.

 

'우리의 불타는 배가 일 년 뒤에는 네팔로 흘러가게 될 것임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창문을 열면, 불타는 배는 네팔을 향해 한밤의 LA 창공을 느리게 날아갈 것이다. 그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그 배 위에 우리가 타고 있을 것인가.

 

Imag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