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미셸 슈나이더,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동문선, 2002.

시월의숲 2014. 11. 5. 23:42

 

 

미셸 슈나이더의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를 읽었지만, 딱히 감상문을 쓸 의욕이 일지 않는다. 단순히 책이 재미없었기 때문은 아니다. 실존했던 인물에 대한 전기물임에도 불구하고 딱딱하지 않고, 무엇보다 고리타분하지 않았다. 주인공의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일들을 시간대별로 건조하게 서술하는 방식이 아니라,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악장과 동일하게 구성된 서술방식이 전기물의 구태의연함을 벗어나게 하는데 한 몫을 한 것이다. 서술방식만이 아니다. 만약 구성의 독특함에 비해 내용이 참신하지 못했다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을텐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어쩌면 참신하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수사의 화려함이라고 해야할까, 비유적이고 잠언적인 표현들이 넘쳐흐른다. 이런 걸 프랑스 문학 특유의 문체라고 해야할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내가 읽은 프랑스 작가들의 문학에서 느꼈던, 다소의 수다스러움과 약간 과장되고 들뜬 열기, 자아도취적인 수사 등의 특징들이 이 책에서도 느껴졌다.

 

내가 이 책을 읽고 감상문을 쓸 의욕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그런게 있다면)는, 책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인 것, 예를 들자면 '음악'에 있었다. 나는 글렌 굴드에 대해 읽으면서, 고작 그가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만을 들었을 뿐이다. 이 책의 저자에 의해 서술되고 있는, 글렌 굴드가 연주한 음악을 나는 거의 듣지 못했다. 저자가 때로 흥분에 겨워 설명하고 있는 글렌 굴드의 모차르트, 베토벤, 베르크를, 그가 연주한 음악을 듣듯 그렇게 느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라고 할까. 만약 내가 그의 음악을 직접 들었더라면, 저자가 애정을 가지고 묘사하고 있는 연주에 대한 감상을 내 생각과 어느정도 비교해보기라도 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건 어처구니 없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글렌 굴드의 전기를 읽기 위해서 그의 모든 음악을 들을 필요는 없으니까. 글렌 굴드의 연주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나처럼 골드베르크 변주곡 하나만 듣고 이 책을 서슴없이 집어 든 독자들에게도 이 책은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나같은 경우, 이 책으로 인해 '그가 연주한 바흐'가 아닌 '다른 음악'을 찾아서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므로. 이러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음으로써 글렌 굴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느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는 마땅한 대답을 찾느라 우물거릴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단편적인 사실들, 그가 연주자로서 절정에 달했을 때 돌연 연주를 그만두고 은거아닌 은거를 했다는 점, 지독한 대중 혐오증 혹은 대중들 앞에서의 연주에 대한 불완전함 때문에 모든 연주회를 중단했으면서도 유독 스튜디오에서의 연주를 편안해 하고, 녹음을 더 신뢰했다는 점, 건강에 대한 강박 때문에 수십 개의 약을 먹었으며, 타인과의 악수를 꺼리고, 더운날에도 두터운 외투와 장갑을 끼고 연주회를 다녔다는 점, 연주회를 할 때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앉은뱅이 의자를 가지고 다니며, 그 의자에 앉아서만 연주를 했다는 점, 곱추를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낮은 의자에 앉아서 노래를 하듯 허밍을 넣으며 피아노를 연주했다는 점 등을 알았을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내가 그를 안다고 할 수 있는가? 나는 어쩐지 이 책을 읽고나서 그를 더욱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것 같다. 이 책은 그와 그의 연주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키며, 희미한 안개 속에 우리를 던져 놓는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글렌 굴드에 대해 그저 '피아노에 대한 열정'이라고만 말한다면, 그를 너무나 단순히 보는 것이리라. 이 책은 그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피아노를 통해 그려놓은 하나의(혹은 수많은) 세계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느끼기 위해서 씌여진 책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또한 그의 피아노를 이해하는 것이 곧 그를 이해하는 가장 확실하고도 유일한 방법임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므로.

 

책의 제일 마지막에 저자는 이렇게 썼다.

 

'글렌 굴드는 음악을 앓고 있었다. 치유될 수 없는 병.'(2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