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누군가 길을 떠났다

시월의숲 2014. 12. 27. 17:16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른 것의 실체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생각에 잠긴다. 나는 죽음의 비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차피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니까. 내가 말하는 것은 사람이 삶을 떠날 때의 육체적인 감각이다. 인간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다. 그러나 그 공포는 막연하다. 보통의 인간은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통의 인간이 병들거나 늙으면, 그는 무無의 심연을 거의 들여다보지도 않고서 그것의 공허함을 인정해버린다. 이것은 인간에게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사상가가 죽음을 잠에 비유한 일도 그리 크게 나을 바가 없다. 죽음이 잠과 비슷한 점이 없는데 왜 하필이면 잠이란 말인가? 잠의 본질은 인간이 거기에서 깨어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에서 깨어나는 일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없다. 죽음이 잠과 같다면 인간은 죽음에서 깨어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보통 인간이 갖고 있는 죽음에 대한 개념과 일치하지 않는다. 보통 인간은 죽음을 깨어날 수 없는 잠으로 본다. 그것은 무를 의미한다.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 죽음은 잠과 다르다. 잠을 자면서 인간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중 누구도 죽음을 어떤 일에 비유해서 설명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죽음을 경험해보지 못했고, 따라서 죽음과 유사한 성격을 갖는 그 무엇도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죽어 있는 사람을 볼 때, 나는 여행을 떠난 자가 떠오른다. 시체는 나에게 벗어놓은 옷가지와도 같다. 누군가 길을 떠났다. 그는 자신이 한때 입고 있었던 단 한 벌뿐인 옷을, 가져갈 필요가 없었다.(87~88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

죽음같은 잠. 때로 나는 그런 것을 상상했다. 하지만 페소아의 말대로라면 '죽음같은'이란 말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우리는 그 누구도 죽음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것의 실체를 알지 못한다. 그것의 육체적인 감각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죽음이란(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그것이 찾아온 사람에게는 더이상 물어볼 수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잠에 비유하는 것은 인간 스스로 상상력이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살아있는 자가 할 수 있는 너무나 손쉽고도 안일한 비유이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상당히 매력적인 비유이기도 하다. 죽음이 잠과 같다면 우리는 막연한 죽음의 공포로부터 어쩌면 헤어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악몽이 아닐 경우에만 해당되는 말이겠지만.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영원한 잠일수도, 영원한 떠남일수도 있다. 그것을 알 수 없기에 그것은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깨어날 수 없는 잠. 죽음을 사는 삶. 되돌아올 수 없는 여행. 돌이킬 수 없다는 것. 無. 한 때 자신과 함께 했던 몸을 가져갈 필요가 없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있고 없음. 없음이 있는. 과거의 한 시절, 나와 함께 했던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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